전수혜 신임 여성경제인협회장…"'병아리' 여성CEO 기업, '중닭' 될때까지 지원 필요"

"여성 경영자가 이끄는 기업의 대다수는 연매출이 수억~수십억원에 불과한 '병아리'들입니다. 병아리가 어떻게 장닭과 싸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춘 '중닭'이 될 때까지 정부와 협회가 보살피고 이끌어줘야 합니다. "

21일 서울 역삼동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관에서 만난 전수혜 신임 여경협 회장(63)은 대뜸 닭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이디어와 기술력 외에는 내세울 게 없는 수많은 '병아리' 여성 기업들이 판로 확보에 실패하거나 자금난에 부딪쳐 사업을 접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였다. 오는 27일 제6대 여경협 회장으로 취임하는 전 회장은 조선업에 뛰어든 지 15년 만에 오리엔트조선 그룹을 연매출 수천억원대의 중견 기업으로 성장시킨 '여걸'로 꼽힌다. 1999년 제정한 '여성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여경협은 현재 1700개 회원사를 두고 있는 국내 최대 여성 경제단체다.

전 회장은 "여성 기업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방안을 정부와 협의할 계획"이라며 "정부가 공공물품을 조달할 때 여성 경영자가 대표로 있는 기업에 한해 최대 2000만원까지 수의계약을 해주고 있는데 상한금액을 5000만~1억원으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기업에 대한 저금리 대출 확대도 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다. '여성 기업인은 육아 때문에 사업에 올인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거부당하거나 고금리를 적용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전 회장은 "조금만 도와주면 살아날 수 있는 수많은 여성 기업들이 은행에서 수천만원을 빌리지 못해 문을 닫기도 한다"며 "매출액이 작은 탓에 연 10%가 넘는 고금리로 대출받는 여성 기업인도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대학(동아대 영문과) 졸업 후 잠시 교사로 일하던 전 회장이 전업주부 생활을 거쳐 기업인으로 변신한 시점은 1987년.수출입 화물 물류업체인 세방을 다니던 남편(이동희 오리엔트조선 그룹 회장)과 함께 세계 각국의 선박을 대상으로 항해 기간 중 필요한 각종 물품을 공급하는 오리엔트마린을 설립한 것.

여기에서 벌어들인 자금으로 1995년 오리엔트조선을 설립,선박 수리업에 뛰어든 뒤 2006년 신조선(新造船 · 새 배 건조) 사업에 진출했다. 이미 부산조선소에서 중소형 벌크선 4척을 건조한 데 이어 약 100만㎡(30만평) 규모의 광양조선소에서 18만t짜리 중대형 벌크선도 제작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이미 몇몇 중소 조선업체가 도산한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선전은 주목할 만하다. 전 회장은 최고경영자(CEO)로서 오리엔트마린과 오리엔트조선을 진두지휘해 왔다.

전 회장은 "조선업에 처음 뛰어들 때만 해도 '여자가 무슨 배를 만드느냐'며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지만 이제는 '여성의 섬세한 손길로 만든 배라 더 신뢰가 간다'는 격려를 자주 듣는다"며 "임기 3년 동안 여성 기업인들이 특유의 세심함과 꼼꼼함을 바탕으로 회사를 반석 위에 올릴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