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TV개별소비세 이상한 잣대

"정부가 심했어요. TV는 한국 기업이 세계 1,2위를 달리는 산업인데 밀어주지는 못할 망정…."

품목별로 전력소비량 상위 10%인 TV,에어컨,냉장고,드럼세탁기 등 4개 품목에 오는 4월부터 5%의 개별소비세를 부과하기로 한 데 대해 국내 TV 메이커의 한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매출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똑같이 세금이 올랐음에도 불구,냉장고나 세탁기 담당자들의 반응은 딴판이었다. "전력 소모량이 많은 제품에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며,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었다.

TV 업계가 개별소비세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에너지 먹는 하마'를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에어컨과 세탁기는 늘 전원을 켜 놓는 품목으로 분류해 월 소비전력을 적용했으며,가족의 수에 따라 사용빈도가 천차만별인 드럼세탁기는 1회 세탁 시 소비전력을 에너지 다소비제품을 구분하는 잣대로 삼았다. 반면 TV의 과세 기준은 정격소비전력(300W)이다. 정격소비전력은 TV 전원부분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최대 전력공급치를 의미하는 것으로,실제 TV를 시청할 때의 소비전력이 아닌 안정성 규격에 해당한다. 대개 TV의 크기가 클수록 정격소비전력도 높다.

전문가들은 업계의 불만에 일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과 비슷한 세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호주 등은 일정 분량의 표준동영상(미국의 경우 10분)을 재생할 때 소모하는 전력을 과세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에너지효율 인증인 미국 에너지스타도 이 방식으로 저전력 제품을 가려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절전형 TV라 하더라도 정격소비전략을 잣대로 삼으면 꼼짝없이 걸려들 수밖에 없다"며 "대형 TV를 사는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세금부담을 안겨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탄소 녹색사회를 이루기 위해 에너지 효율이 뛰어난 제품 소비를 장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정책 취지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렇다고 업계가 납득하지 못하는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곤란하다. 개별소비세가 한국을 대표하는 TV 산업의 경쟁력을 좀먹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송형석 산업부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