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급등기 '住테크'] 집주인에 선물공세…"전학은 못보내" 아파트 대신 빌라로

전셋값 급등 백태
연초부터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오르면서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재계약하기 위해 집주인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가 하면 전셋값이 오른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집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전셋값 상승 와중에 벌어지고 있는 백태를 모아봤다.

◆집 없으니 선물이라도지난달부터 서울 일부 지역의 전셋값이 크게 오르면서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집을 구하려는 세입자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한번 봐 달라.' '오른 전세금을 못내면 집을 빼겠다. ' 세입자들이 집주인과 이처럼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약자인 세입자들은 '칼날'을 쥘 수밖에 없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서 전세를 사는 박모씨(42)는 최근 과일 바구니를 들고 주인집을 찾았다. 직접 얼굴을 맞댄 것은 보일러 교체 비용을 놓고 집주인과 한바탕 다툰 지 한 달 만이다. 인근 전셋값이 2년 전과 비교해 3000만~4000만원 오른 상황에서 전세금 마련이 여의치 않아 어떻게든 재계약을 해보려 한 것.박씨는 "새로 전세를 얻어 나가려면 번거로운 데다 중개업소 수수료 등을 지불해야 하는 만큼 1500만원 정도 올려주는 선에서 합의가 가능할 줄 알았다"면서 "지난달 싸웠던 앙금이 남아 있는지 집주인이 끝내 거부해 집을 나가야 할 형편"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박씨는 전세자금을 대출받기로 하고 다른 집을 알아보고 있다.
◆전문직도 고통

전세난은 저소득층뿐 아니라 전문직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잠실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의사 송모씨(51)는 최근 전세계약 연장을 포기하고 다른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송씨는 송파구 문정동의 래미안 아파트(전용면적 84㎡)를 2억3000만원에 전세 살고 있는데 집주인이 최근 3억2000만원으로 무려 9000만원을 올려 달라고 했기 때문.송씨가 아파트 전세를 얻은 2008년 초는 잠실 일대에 신규 아파트가 입주하면서 인근 전셋값도 크게 떨어진 때로 2억원 전후에 비슷한 크기의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 아들을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조기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이기도 한 송씨는 역세권의 중형 오피스텔이나 외곽 지역 아파트로 집을 옮겨갈 생각이다.

그는 "병원 간 경쟁이 치열해 수입이 예전보다 줄어든 데다 학비와 생활비를 미국으로 부치고 나면 빠듯하다"며 "가구나 물건 등 살림살이가 만만치 않아 웬만하면 살던 집에서 살려고 생각했는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모 공기업의 사내변호사인 정모씨(37)도 서초구 서초동 우성아파트 전용면적 85㎡ 전셋값이 1년 사이에 6000만원 가까이 오르자 재계약을 포기하고 인근에서 비슷한 크기의 신축 빌라를 찾아 옮겼다.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자녀 교육을 위해서 빌라에 살더라도 강남권에 머무르는 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아이가 자라는 환경이나 편의시설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아파트가 좋지만 대출까지 해가며 전세금을 올려주기는 싫었다"며 "다른 지역으로 학교를 옮기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노경목/이유정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