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發 악재 증시 강타…외국인 선물매도 사상최대

2조원 넘게 '팔자'나서…삼성전자 등 시총상위주 급락
코스피지수가 외국인의 무차별 매도 공세에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외국인은 미국의 은행 규제안이 글로벌 유동성 회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현 · 선물 가릴 것 없이 앞다퉈 '팔자'에 나섰다. 특히 그동안 사모은 주식에 대한 헤지 수요가 겹치면서 선물 순매도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

갖은 외부 악재들이 한꺼번에 국내 증시를 압박하고 있어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에 따른 추가 조정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현 · 선물 2조7000억 순매도

뉴욕증시가 이틀 연속 하락했다는 소식에 22일 1700선 아래로 밀려나며 출발한 코스피지수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결국 37.66포인트(2.19%) 내린 1684.35로 거래를 마쳤다. 6거래일 만에 1700선을 내준 코스피지수는 투자심리가 급속도로 악화되며 한때 1665.60까지 내려앉기도 했다.

외국인이 현물시장에서만 4920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지수 하락을 부추겼다. 전날 6000억원 가까이 사들였던 선물시장에서는 무려 2조2965억원에 달하는 매물 폭탄을 쏟아냈다. 이는 기존 사상 최대치였던 2007년 11월8일의 1조7264억원보다 30% 이상 많은 규모다. 외국인 매도에 선물값이 급락하면서 프로그램도 7123억원의 '팔자' 우위로 돌아섰다. 외국인의 이 같은 선물 매도는 유동성 회수에 따른 주가 하락에 대비한 것이란 분석이다. 안승원 UBS증권 전무는 "올 들어 현물을 많이 산 글로벌 장기투자 펀드들이 미국발 악재로 아시아 증시가 하락할 것에 대비해 주식 비중을 줄이는 대신 선물을 매도해 헤지에 나섰다"고 전했다. 특히 국내 증시의 경우 중국발 긴축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날 전 고점을 돌파하는 강세를 보인 탓에 상대적으로 매도 규모가 더 컸다는 설명이다.

심상범 대우증권 연구원은 "하루 전 지수 반등에 선물을 대거 매수했던 외국인이 미국의 은행 규제 방침으로 안전 자산 선호심리가 높아지면서 달러화가 급반등하자 야간거래를 이용해 포지션 청산(환매)에 나섰다"며 "여기에 장중 투기적인 신규 매도세력까지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82만5000원으로 2.94% 하락한 것을 비롯해 포스코(-4.07%) KB금융(-3.74%) 현대중공업(-3.85%)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 대부분이 약세를 보였다. 다만 현대차가 미국 시장점유율 상승 기대로 강보합권을 유지했고 한국전력은 원자력발전 가치가 재부각되며 하루 만에 반등했다. ◆60일 이동평균선은 지켜질 듯

일시적이나마 악재들이 산적해 있어 당장 외국인의 대규모 순매수 전환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정의석 신한금융투자 투자분석부장은 "은행들에 대한 미국의 투자 규제가 경기 과열에 따른 중국의 긴축 우려마저 다시 자극하고 있어 심리적으로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권기정 RBS증권 상무는 "지난해 이뤄졌던 대규모 유동성 투입에 따른 후유증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등으로 외국인이 예전처럼 공격적으로 매수에 나서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당분간 매도세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증시를 지탱하고 있는 외국인이 몸을 사릴 경우 주가 회복 속도가 더뎌질 수 있다. 다만 지수가 추가 하락하더라도 추세가 무너질 정도는 아닐 것이란 분석이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외부 악재에 일시적으로 수급 구조가 무너지면서 지수 낙폭이 커졌지만 정책 효과나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한 신성장 모멘텀 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미국 은행들에 대한 규제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도 확인되지 않아 추가 급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설명이다.

정 부장은 "코스피지수가 장중 지난달 고점인 1660선 근처에서 지지를 받고 낙폭을 줄인 점이 긍정적"이라면서 "60일 이동평균선이 위치한 1630선 위에서는 기술적으로 상승 추세가 살아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