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原罪는 금융당국에 있다

요즘 금융인들의 술자리 단골 안주는'강정원 국민은행장'이다. 10여분만 지나면 강 행장의 KB금융회장 사퇴를 두고 갑론을박이 시작된다. 논쟁은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계속된다.

어쩌면 상반기 내내 시끄러울지 모르겠다. 2월 임시국회에선 '관치금융'에 대한 질타가 이어질 테고 금융감독원의 검사 결과가 나오는 3~4월께 문책태풍이 몰아칠 것이다. 이어 새로운 KB회장 선임을 놓고 온갖 설이 난무할 것 같다. 강 행장 사태의 교훈을 얻기 위해 원로 금융인들을 만나봤다. 그들은 세 가지 측면에서 평가와 주문을 내놓았다.

첫째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탄식했듯이 이번 사태를 관치금융으로 몰아가는 여론이 금융당국으로선 야속하겠지만 그런 비판을 자초한 원죄(原罪)는 그들에게 있기 때문에 삼가고 또 삼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십수년 전만 해도 금융계 인사는 정치권 청와대 정부가 마음대로 휘둘렀다. 그들은 하나가 되거나 때로는 권력을 나눠 가지며 금융회사의 주주와 고객을 무시한 인사를 했다. 파행인사를 오랫동안 봐온 금융계 사람들이나 언론은 필요해 보이는 듯한 규제마저도 고개를 젓는다. 그런 판에 금융감독원이 국민은행 검사를 시작하면서 피의자를 거칠게 다루는 검찰 흉내를 냈으니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은 '규제의 시대'인 게 분명하다. 다시는 금융위기를 겪지 말자는 컨센서스 아래 금융회사와 최고경영자(CEO)의 탐욕을 막기 위한 온갖 장치가 되살아나고 있다. 그렇다고 국내 여론이 감독당국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관료출신인 이철휘 캠코 사장과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KB금융회장에 도전했을 때 일부에서 '적절치 않다'는 평가가 나왔던 것도 관치금융에 대한 알레르기성 반응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융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외이사제도 개편 과정에서나 새 KB회장 선임 때 관료 때가 빠지지 않은 사람들이 점령군처럼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원로들은 지적한다.

둘째 명백한 주인이 없는 은행의 경영자들 역시 삼가고 또 삼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 행장 사태도 모두가 책임을 불완전하게 위임함으로써 국민은행이 제대로 책임을 지게 만드는 데 실패한 데서 비롯됐다. 주주는 자기들이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사외이사는 주주의 대리인인 경영자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해 경영자가 아무런 책임없이 행동한 듯한 인상을 줬다. 책임의식이 없으면 힘은 남용될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는 스캔들이 생긴다. 주인없는 자본주의는 실패한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뚜렷한 주인이 없는 은행에서 그런 일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

셋째 희생양만 찾지말고 영웅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터지면 특정 개인을 난도질하는 게 우리네 풍토다. 그래서 스타가 될 수 있는 인재도, 원로로 대접받아야 할 CEO도 늘 좌불안석이다. 금융회사 CEO는 임기가 되면 당연히 나가야 하는 공기업 사장이 아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기업에서도 실적이 뛰어난 사장은 연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금융회사 CEO가 오래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당하는 풍토는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광철 부국장겸 경제부장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