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수출 '숨은 공신' 있었네

●실험용 원자로 만든 일진에너지
실제 크기 144분의 1로 축소
실험 통해 우수성 입증…최대효자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이 확정됐다는 소식에 직원들을 부둥켜 안고 소리내 펑펑 울었어요. 얼마나 기쁘던지…."

지난달 27일 '47조원 규모 원전 수주'를 회고하던 이상배 일진에너지 사장(58)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1개월가량 지난 지금에도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UAE에 수출하는 신형 경수로 3세대 원전(APR 1400)의 토대가 되는 아틀라스(ATLAS)를 자신이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틀라스는 실제 원자로를 144분의 1로 축소 제작한 '가압경수로 열수력 종합효과 실험장치'.UAE에 수출될 3세대 원전이 8.0의 지진에도 견딜수 있고 기존 2세대 원전보다 기능이 무려 10배나 강화됐다는 것을 가상 실험을 통해 입증한 원전 수출의 최대 효자인 셈이다.

일진에너지는 2002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아틀라스 프로젝트에서 대기업을 제치고 주 제작사로 선정됐다. 이후 아틀라스를 제작하는 데 꼬박 5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 사장은 "원자력연구원 박사 연구진이 장치 설계를 수정하면 현장 직원들이 밤을 새워가며 제작 · 조립하는 과정을 수천 번 반복했다"고 말했다. 워낙 정밀도를 요구하는 작업이어서 심적 부담도 컸다.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면서 상당수 직원이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 당시 회사 주 사업인 석유화학 초대형 플랜트 시장이 호황이었음에도 이 사장이 아틀라스에 몰두하자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들도 생겨났다.

이 사장은 고비마다 이 사업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며 직원들을 설득했다. 울산공장에서 완성된 아틀라스는 2006년 한국원자력연구원으로 옮겨졌고 1년이 더 걸려서야 설치됐다. 이 사장은 제작상의 어려움 등으로 90억원에 수주한 아틀라스 사업에서 오히려 30여억원을 손해봤다. 그가 아틀라스에 매달리고 있는 동안 울산지역 동종업체들은 석유화학 설비투자를 등에 업고 매출이 2000억~3000억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사장은 "당장의 성장 기회를 놓친 데 대해선 직원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면서도 "아틀라스가 국내 원전 수출이라는 값진 결실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세상을 놀라게 만들 만한 초대형 프로젝트를 또 준비하고 있다. 전력 생산과 해수 담수화가 동시에 가능한 중소형 원자로 개발사업 모델인 '스마트(SMART)' 사업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추진 중인 1단계 사업(중소형 원자로에 들어가는 주요 기계장치의 설계와 성능시험)의 70% 이상을 이미 수주했다. 이 사장은 "스마트 사업은 대용량 원전 도입이 불가능한 개발도상국의 중소형 원전 수요를 겨냥하기 위한 것"이라며 "사업이 완료되면 '원전 80기 수출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4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