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혈통 간직한 외양간의 워낭소리

이순원씨 장편소설 '워낭' 출간
흰별소,버들소,화등불소,홍걸소,콩죽소,무명소,검은눈소….

소설가 이순원씨(52 · 사진)의 신작 장편소설 《워낭》(실천문학사)에 등장하는 소들의 이름이다. 오늘날 도시에서 소는 식탁 위에 오르는 고기 반찬 취급을 받지만,예전 시골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듣기만 해도 정겨운 이름을 붙여주며 애지중지했던 가족의 일원이었다. 《워낭》에서 이씨는 강원도 시골 우추리 차무집 외양간 소 12대와 차무집 사람 4대가 1884년 갑신정변부터 2008년까지 거의 120년 동안 살뜰하게 나누어왔던 정을 그린다. 이씨는 25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강원도에서는 소를 식구처럼 생각해 '생구'라고 불렀다"면서 "시골에서 아이가 장독을 깨면 혼이 났지만,송아지는 장독을 깨도 봐줄 정도였다"고 했다. 이번 소설에는 이씨의 체험이 십분 반영됐다. 소설 속 '차무집'은 이씨의 집안이 모델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 이씨와 이씨의 동생은 검은눈소와 친형제,친구처럼 지냈다. 소설에 나오는 '세일'은 이씨의 당숙에서 따온 인물이다.

"지난해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나서 동생과 메신저로 대화하다가 검은눈소 이야기가 나왔어요. 동생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검은눈소에 대한 추억이 많거든요. 사실 소는 개나 돼지와는 좀 다른 존재지요. 가축이라기보다는 생업을 협업하고 분업했던 친구가 아닐까요. 개는 얻어먹지만 소는 자기가 먹을 걸 장만하잖아요. "

유년기의 추억 때문인지 이씨의 작품세계에서도 소는 각별하다. 등단작 <소>도 소가 주요 소재였으며,<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에서도 소와 교감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최근에 힘쓰고 있는 강원도 바우길 개척에서도 소를 염두에 두고 있다. "예전에는 아무리 가파른 길도 소와 말이 함께 걸을 수 있었어요. 바우길을 걷다 보니 소가 많이 생각나더군요. 요즘 인공적으로 만든 길들은 계단 때문에 소가 걸을 수 없잖아요. 바우길은 소를 끌고 가도 되는 길로 만들고 싶어요. 소에게 친화적인 길이 자연친화적인 길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혈통있는 개나 고양이와 달리 소에게는 딱히 '족보'라 할 게 없다. 그럼에도 이씨는 성장과정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바탕으로 12대 혈통을 복원해냈다.

그는 "농사를 짓는 시골집에서는 대대로 암소들이 그 나름의 가계를 지켜온다"면서 "인간은 장남이 대를 잇지만,외양간은 암소의 막내딸이 대를 이어나가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