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도 인정하는 '추사' 대가…본업은 은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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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상 광주銀 부부장, 고문헌 연구논문 10여편 발표
"고문헌 연구가와 은행원,언뜻 잘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두 가지를 병행하면서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죠."
고문헌 연구가 박철상씨(44)를 처음 대하는 사람은 두 번 놀란다. 독학으로 고문헌 연구에서 일가를 이룬 것과 고문헌 연구에 필요한 역사학 한문학 고미술학 서예사 국문학 서지학 문헌정보학 등을 줄줄 꿰는 그의 본업이 은행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광주은행 외환사업부 부부장인 그는 고문헌연구계에 크게 기여했다. 장서인(藏書印 · 책 그림 글씨 등의 소장자가 자신의 소유를 밝히기 위해 찍는 인장)의 재발견도 그 중 하나다. 이를 통해 작품 제작 연대나 소유자 등을 밝혀주는 고증은 물론 인장 속 예술세계가 비로소 세상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장서인을 고문헌 영역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학계의 연구 풍토를 바꿔놓은 것이다.
추사 김정희에 대해서는 손꼽히는 연구가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2002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완당평전' 비평을 통해 200여군데의 오류를 지적하며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한 그는 그동안 발표한 10여편의 논문으로 학계에 새로운 정설을 세워왔다. 그가 특히 추사에 몰두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 사회를 투영해볼 수 있는 사상적 원류라는 점에서다. 그는 "이 시대의 모태는 조선 후기에 등장한 하급 관리나 기술직 중인,그리고 일반 백성을 통칭하는 여항인(閭巷人 · 여염의 사람)의 성장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들의 중심에 서 있던 이가 추사"라며 "추사를 알면 조선의 19세기가 보이고 조선의 19세기를 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고문헌 연구에 나서게 된 데는 한학자인 부친의 영향이 컸다. 어릴 적부터 부친에게서 한학을 배운 그는 초등학교 때 부친의 어깨 너머로 보던 추사의 글씨에 매료돼 고문헌 연구의 길로 빠져들었다. 전주 출신으로 전북대 경영학과를 거쳐 1991년 광주은행에 입행하면서 두 가지 삶을 사는 1인2역의 인생이 시작됐다. 은행 내에서 그는 실력 있는 외환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외환분야는 신용장(LC)의 각종 메커니즘은 물론 지급보증과 각국의 상거래 관행,외환업무 등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 은행원들 사이에는 골치 아픈 분야로 꼽힌다. 올해로 20년째인 직장생활 중 대부분을 외환분야에서 일하며 지난해 우수직원 표창을 받는 등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원어민 수준의 중국어 회화 실력은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고문헌 연구와 은행업무는 성격이 너무 달라 한쪽에 몰두하면 다른 쪽은 머리에서 깨끗이 비울 수 있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됩니다. 또 두 가지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관점에서 자신의 일을 돌아볼 수 있는 장점도 있죠." 그는 추사가 청나라 학자 옹방강을 10년 동안 준비한 끝에 만난 일화를 새기면서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해 온 것도 직장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