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장인정신 '모노즈쿠리' 가 흔들린다

월紙 "글로벌 경쟁 탓 품질 명성 빛바래"
일본내서도 제품 리콜 3년새 80% 급증
일본말로 '모노즈쿠리(物作り)'는 직역하면 '물건 만들기'다. 하지만 이 단어는 단순한 '물건 제조'의 의미가 아니다. 작은 손톱깎이 하나를 만들더라도 장인의 혼을 담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장인정신'이란 말로 의역되는 이유다. '모노즈쿠리'야말로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이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도요타자동차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제조업체들이 바로 이 '장인정신'으로 세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29일 "최근 일본의 모노즈쿠리가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장기 불황과 내수 침체의 파고를 넘는 과정에서 일본 제품 특유의 모노즈쿠리 요소가 희박해졌다는 것이다. 최근 도요타자동차가 가속페달 결함으로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 1000만대 가까운 자동차를 리콜(회수 후 무상수리)키로 결정한 것은 상징적 사례다. 도요타의 리콜 사태는 세계 최강으로 인식됐던 일본 제조업의 이미지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제조기업의 모노즈쿠리가 무너진 것은 경기침체에 따른 과도한 비용 절감과 치열해진 글로벌 경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과도하게 허리띠를 졸라맸고,내수 축소를 이기기 위해 해외 공장을 크게 늘린 것이 품질 악화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링 분야 싱크탱크인 일본리서치연구소의 미야우치 히로노리 연구원은 "일본 기업들이 공장을 해외로 대거 옮긴 데다 비용 절감을 위해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했다"며 "그 과정에서 품질 관리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경쟁 환경 변화도 일본의 모노즈쿠리를 위협했다. 특히 전자제품의 경우 고도의 기술보다는 디자인과 마케팅이 중요해지고,대량 자동생산화되면서 모노즈쿠리의 의미가 퇴색했다.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도 제품에 대한 불만과 리콜이 최근 수년 새 급격히 늘었다.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2004~2008년 5년 동안 일본 국내차 리콜 건수는 앞선 5년(2000~2004년)에 비해 두 배로 급증했다. 또 자동차 식품 약품을 제외한 제품의 안전과 관련된 리콜 건수는 2009년 189건에 달했다. 3년 전에 비해 무려 80% 증가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기업들이 제품으로 발생한 모든 사고를 10일 내에 보고하도록 한 새로운 법을 2007년 도입하기도 했다. 2007년 이전에는 제품 관련 사고 공개는 회사 재량이었다.

하지만 2006년 나고야에 있는 파노마라는 회사가 생산한 히터의 결함으로 소비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히터에 문제가 있어 사용할 때 유독가스가 나온 것이다. 이 사고를 계기로 일본 내 제품 결함 시정에 대한 제도가 크게 강화됐다.

물론 일본 기업 경영자들은 모노즈쿠리를 아직도 일본 경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사무기기업체 리코의 사쿠라이 마사미쓰 사장은 "일본이 모노즈쿠리 정신을 버리고 다른 길을 걷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치열해져가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일본의 모노즈쿠리가 앞으로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상당수 일본 기업인들이 고민하고 있다.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