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백남준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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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1932~2006)이 1962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바이올린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일 때의 일이다. 객석에 있던 뒤셀도르프 관현악단 바이올린 주자가 "바이올린을 살려줘라"고 외쳤다. 분신처럼 소중한 악기가 망가지는 것을 그냥 넘기기 어려웠던 것이다. 객석 한쪽에서 다른 고함이 들렸다. "콘서트를 방해하지 말라".얼마 후 전위미술가로 이름을 날린 요셉 보이스였다. 보이스는 낯선 독일에 살던 백남준을 보살피며 공동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평생 예술적 동지로 지냈다.
백남준은 음악가로 출발해 다양한 기행(奇行)을 펼치는 행위예술가로 명성을 날렸다. 쾰른에서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구' 퍼포먼스를 벌일 때는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행위로 관객들에게 '유쾌한 쇼크'를 선사했다. 뉴욕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1960년대 중반 이후 '비디오 아트'를 창시했고,설치미술에서부터 방송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거창한 사상이나 철학을 배제한 예술관,거침없는 사고와 행동 등으로 '지구촌 민주주의 건달'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백남준의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독일 국회의사당,일본 후쿠오카 캐널시티 등 여러 곳에 전시되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6년 그를 '아시아의 영웅'으로 선정했을 정도로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나라에선 그의 예술적 명성은 대중적 이해와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가 '백남준연구소'를 세우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라고 한다. 백남준 연구를 활성화해 창조적 예술 정신과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다는 구상이다.
1984년 35년 만에 고국을 찾은 백남준에게 예술이 뭐냐고 묻자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라고 답했다. 그는 평소에도 "상투적인 세계에 예술적 충격이나마 없으면 인간은 자멸할지도 모른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예술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워낙 건조하고 재미없다 보니 위대한 것처럼 보일 따름이란 얘기다.
판에 박은 듯한 일상에 지쳐 있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속이 뻥 뚫리는 듯한 해방감을 맛본다. 삶의 활력이나 영감을 얻기도 한다. 국회폭력,튀는 판결,엽기범죄 같은 정치 · 사회적 충격과 달리 예술적 충격은 잦을수록 좋다. 백남준연구소가 그의 번뜩이는 천재성과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전정신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백남준은 음악가로 출발해 다양한 기행(奇行)을 펼치는 행위예술가로 명성을 날렸다. 쾰른에서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구' 퍼포먼스를 벌일 때는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행위로 관객들에게 '유쾌한 쇼크'를 선사했다. 뉴욕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1960년대 중반 이후 '비디오 아트'를 창시했고,설치미술에서부터 방송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거창한 사상이나 철학을 배제한 예술관,거침없는 사고와 행동 등으로 '지구촌 민주주의 건달'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백남준의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독일 국회의사당,일본 후쿠오카 캐널시티 등 여러 곳에 전시되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6년 그를 '아시아의 영웅'으로 선정했을 정도로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나라에선 그의 예술적 명성은 대중적 이해와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가 '백남준연구소'를 세우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라고 한다. 백남준 연구를 활성화해 창조적 예술 정신과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다는 구상이다.
1984년 35년 만에 고국을 찾은 백남준에게 예술이 뭐냐고 묻자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라고 답했다. 그는 평소에도 "상투적인 세계에 예술적 충격이나마 없으면 인간은 자멸할지도 모른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예술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워낙 건조하고 재미없다 보니 위대한 것처럼 보일 따름이란 얘기다.
판에 박은 듯한 일상에 지쳐 있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속이 뻥 뚫리는 듯한 해방감을 맛본다. 삶의 활력이나 영감을 얻기도 한다. 국회폭력,튀는 판결,엽기범죄 같은 정치 · 사회적 충격과 달리 예술적 충격은 잦을수록 좋다. 백남준연구소가 그의 번뜩이는 천재성과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전정신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