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 미래비전 세미나] "한국 금융은 초등생 수준…규제풀어 중학교만큼 끌어올려야"

바람직한 금융 규제 일률적 판단 못해
민유성 産銀회장 "앞으로 3년 M&A 적기"
정부가 '볼커 룰(Volcker rule)'로 대변되는 미국 정부의 금융규제 강화방안을 국내에 도입하는 것은 무리라고 결론 내린 것은 한국의 금융산업이 선진국과 비교해 아직 미미한 수준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래기획원회가 3일 주최한 '위기 이후 한국 금융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미래비전' 세미나에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한 목소리로 규제 완화의 지속적인 추진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곽 위원장은 "한국의 금융산업은 초등학교 수준의 자율이 허용된 반면 미국 등 금융 선진국은 대학생 수준의 자율을 누려왔다"며 "중학생 수준의 자율은 허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각국의 금융 발전 정도와 금융 환경에는 차이가 있으므로 바람직한 금융 규제의 방향 및 정도에 대해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제적 논의를 그대로 적용해 금융 규제를 강화하면 한국의 금융 자율화 정도를 다시 초등학생 수준으로 되돌리는 잘못을 범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곽 위원장은 특히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박진회 씨티은행 수석부행장도 "각 국가별로 산업발전의 수준이 다르고 금융의 위치도 다르다"면서 "덩치가 크다고 해서 획일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볼커 룰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고,입법화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한국이 서둘러 규제 강화로 정책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은 이미 은행의 유가증권 투자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게 금융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장영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미국의 볼커 룰은 G20에서 추진 중인 금융사 규제와 다른 방향이며 복잡한 대형 금융기관을 상업은행(CB)과 투자은행(IB)으로 쪼개는 식으로 사이즈나 복잡성을 공격하는 개혁 형태"라며 "유니버설뱅킹을 하는 프랑스 영국 등은 반대하기 때문에 국제적 규제로 수용될지도 상당히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진 위원장도 "한국 금융이 처한 상황은 선진 금융시장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어 글로벌 차원의 흐름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일례로 자산 규모 세계 1000위권 은행 중 미국은 159개를 보유한 반면 한국은 단 10개에 그치고,그나마 순위도 70위권에 머물 정도로 초라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진 위원장은 "구조적으로 취약 부문은 철저히 개선하고 금융산업 육성 노력도 지속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규제의 방향에 대해서도 미국의 예처럼 CB와 IB의 분리나 이를 통한 금융회사의 덩치 줄이기보다는 금융회사의 쏠림현상이나 외환 부문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제적 기준에 맞춰 금융회사의 투명성은 높이되 한국적 상황에 맞는 금융산업 육성전략은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은행장으로선 유일하게 주제발표를 통해 인수합병(M&A) 활성화를 통한 금융회사 성장전략을 제시했다.

민 회장은 "대부분의 글로벌 금융회사는 M&A를 통해 성장했다"며 "같은 업종 내 M&A는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다른 업종 간 M&A는 수익구조를 다양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산은은 최근 태국 은행을 인수하려다 볼커 룰에 따른 부담을 우려해 포기했다. 그는 태국 은행 포기가 아쉬운 듯 "값싼 매물이 많이 나와 있는 지금부터 3년간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적기"라며 "우리가 과연 해외 은행을 경영할 능력이 되는가라는 지적이 있는데 이 벽을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회장은 산은의 해외진출 전략과 관련,"앞으로 해외 M&A는 국제 금융시장과 볼커 룰 입법화 과정 등 시장상황을 살펴보면서 신중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심기/김현석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