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풍요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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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자식들이 공부를 더 잘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부잣집 자식들이 공부를 잘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뜻이 들어 있다. 특히 1960,70년대에는 이 말을 부정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집안 살림이 넉넉하면 그만큼 동원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많아서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좋았을 텐데 말이다.
자고 새면 어떤 이유로든 벼락부자가 생기던 그 시절이었다. 그런 갑작스러운 물질적 풍요에는 정신적 혼란이 뒤따르게 마련이었다. 어른들은 과시하기에 바빴고,자식들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 풍요를 감당해 생활의 새로운 원동력으로 삼기에는 힘이 부쳤던 것이다. 반면에 빈곤층 사람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면서,현실의 신산함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식 교육이었다. 이런 사실은 누구보다 자식들 스스로가 더 잘 알았다. 풍요와 빈곤의 관계를,'파피루스'와 '쥐이(紙=종이)'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종이의 기원을 아는가 하고 물으면 대부분 이집트의 파피루스라고 대답한다. 이 때문에 제지업계의 신입사원들도 혼란스러워 한다. 나 자신도 입사한 뒤 3년쯤 돼서야 안 일이다.
파피루스(Papyrus)가 페이퍼(Paper)의 어원이지만,종이의 기원은 아니다. 물론 파피루스나 종이나 기록하는 재료로서는 그 쓰임새가 같았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발명된 파피루스가 기원 후 105년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에 비해 3세기쯤 앞서 있다. 그런데도 파피루스가 종이의 기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바로 경제적 풍요 때문이다.
종이란 식물성 섬유를 물에 풀어 평평하면서도 얇게 엉기도록 해 말린 것이다. 그러나 파피루스는 라일강변에만 자라는 키가 2m,몸통이 5㎝쯤 되는 갈대를 얇게 저민 뒤 가로 세로를 맞춰놓고 풀을 발라 압착한 것이다.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 5세는 알렉실드리아 도서관에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책)를 70만 개나 소장할 정도였다. 그만큼 많은 양의 파피루스를 순전히 노예들의 힘만으로 생산했다. 다시 말해 노예 인력의 풍요 때문에 구태여 다른 생산 방법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는 말이다. 기원 후까지 나무조각들(목간)이나 대나무조각(죽간)을 기록하는 재료로 사용하고 있던 중국(후한시대)은 사정이 달랐다. 필요한 대로 인력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궁중에서 이런 물품의 공급 책임을 맡은 사람은 골치가 아팠다. 손쉽게 대량 생산할 방법을 궁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방법이 나무껍질이나 넝마,헌 어망 따위를 돌절구에 물과 함께 넣고 짓이겨서 얇게 펴 말리는 것이었다. 빈곤이 불러온 혜택이었다.
풍요와 빈곤 가운데 택하라면 나부터 풍요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위험하다. 곧잘 풍요는 사람의 허리띠를 풀게 해 앞으로 가는 길을 잊게 하기 때문이다.
이상문 제지공업연합회 이사장·소설가 kpma@paper.or.kr
자고 새면 어떤 이유로든 벼락부자가 생기던 그 시절이었다. 그런 갑작스러운 물질적 풍요에는 정신적 혼란이 뒤따르게 마련이었다. 어른들은 과시하기에 바빴고,자식들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 풍요를 감당해 생활의 새로운 원동력으로 삼기에는 힘이 부쳤던 것이다. 반면에 빈곤층 사람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면서,현실의 신산함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식 교육이었다. 이런 사실은 누구보다 자식들 스스로가 더 잘 알았다. 풍요와 빈곤의 관계를,'파피루스'와 '쥐이(紙=종이)'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종이의 기원을 아는가 하고 물으면 대부분 이집트의 파피루스라고 대답한다. 이 때문에 제지업계의 신입사원들도 혼란스러워 한다. 나 자신도 입사한 뒤 3년쯤 돼서야 안 일이다.
파피루스(Papyrus)가 페이퍼(Paper)의 어원이지만,종이의 기원은 아니다. 물론 파피루스나 종이나 기록하는 재료로서는 그 쓰임새가 같았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발명된 파피루스가 기원 후 105년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에 비해 3세기쯤 앞서 있다. 그런데도 파피루스가 종이의 기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바로 경제적 풍요 때문이다.
종이란 식물성 섬유를 물에 풀어 평평하면서도 얇게 엉기도록 해 말린 것이다. 그러나 파피루스는 라일강변에만 자라는 키가 2m,몸통이 5㎝쯤 되는 갈대를 얇게 저민 뒤 가로 세로를 맞춰놓고 풀을 발라 압착한 것이다.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 5세는 알렉실드리아 도서관에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책)를 70만 개나 소장할 정도였다. 그만큼 많은 양의 파피루스를 순전히 노예들의 힘만으로 생산했다. 다시 말해 노예 인력의 풍요 때문에 구태여 다른 생산 방법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는 말이다. 기원 후까지 나무조각들(목간)이나 대나무조각(죽간)을 기록하는 재료로 사용하고 있던 중국(후한시대)은 사정이 달랐다. 필요한 대로 인력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궁중에서 이런 물품의 공급 책임을 맡은 사람은 골치가 아팠다. 손쉽게 대량 생산할 방법을 궁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방법이 나무껍질이나 넝마,헌 어망 따위를 돌절구에 물과 함께 넣고 짓이겨서 얇게 펴 말리는 것이었다. 빈곤이 불러온 혜택이었다.
풍요와 빈곤 가운데 택하라면 나부터 풍요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위험하다. 곧잘 풍요는 사람의 허리띠를 풀게 해 앞으로 가는 길을 잊게 하기 때문이다.
이상문 제지공업연합회 이사장·소설가 kpma@pap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