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명태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밤늦게 시를 쓰다가/쇠주를 마실 때/(카아!)/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짜악짝 찢어지어 내몸은 없어질지라도/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한국전쟁 때 종군작가로 활동하던 양명문의 시에 미8군 통역관이었던 작곡가 변훈이 곡을 붙인 가곡 '명태'는 해학과 비장감이 잘 어우러진 절창이다. 노래에서처럼 명태는 가난한 시인이 소주 안주로 먹을 만큼 서민적 생선이었다.

먹을 게 부족했던 탓이었는지 명태 요리는 놀랄 만큼 다양하다. 포를 떠서 부치는 전은 제사상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었고 술꾼들은 국이나 찌개로 쓰린 속을 달랬다. 내장은 창란젓,알은 명란젓,머리는 귀세미젓으로 담갔다. 명태 구이나 김치 두부장 식해 순대 등도 별미로 꼽힌다. 어느 부위 하나 버리지 않고 맛깔스런 음식으로 만들어낸 지혜는 예술에 가깝다. 이름도 여럿이다. 어류학자 정문기가 쓴 '어류박물지'에는 무려 19개의 별칭이 나온다. 신선한 생태를 뜻하는 선태(鮮太),말린 건태,반쯤 말린 코다리,얼린 동태 등이 있다. 잡히는 시기에 따라 일태 이태 삼태 사태 오태 섣달받이 춘태라 불렀고 크기에 따라 대태 중태 소태 왜태 애기태로 나눴다. 새끼는 노가리다. 북쪽 찬바다에서 온 고기라는 뜻의 북어(北魚)는 말릴 때 날이 추워 껍질이 하얗게 된 백태,검은 색이 나는 흑태 등으로 구분했다. 북어중엔 속살이 노르스름하고 부드러운 황태를 최고로 친다. 요즘엔 동해에서 난 명태를 먼 바다에서 잡은 원양태와 구분해 진태(眞太),또는 지방태로 부른다.

명태는 한 해 소비량이 35만1548t(2008년)에 이를 정도로 지금도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먹는 생선이지만 한반도 인근 바다에선 거의 잡히지 않고 대부분 러시아에서 들여온다. 이렇다 보니 수입물량이나 가격을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kg당 가격이 2008년 말까지만 해도 1711원이었으나 지난해부터 슬금슬금 오르더니 설을 앞두고는 3000원선으로 급등했다고 한다. 정부가 명태 어획 쿼터 확대와 함께 치어 인공수정과 방류를 추진한다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명태 맛을 보기 위해선 정부가 나서 러시아와 밀고당기는 협상까지 벌여야 하니 서민의 생선이라 부르기도 어색하다. 경기가 회복된다고는 하나 일자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물가는 뛰고 있다. 명태를 안주로 소주 한 잔 하는 낭만조차 멀어지는 듯해 아쉽다 .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