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함께하는 1기업 1나눔] (28) GS칼텍스‥파란눈의 선생님 온 뒤로 '섬마을 아이들' 눈빛이 달라졌네

GS칼텍스 '도서지역 영어교육'

"How many circles do we need to make a beetle(몇개의 원으로 딱정벌레를 그릴 수 있을까요)?"

지난 5일 전남 여수시 공화동 동여수지역센터 2층.23명의 초등학생들이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 청년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손가락을 펴며 '포(four)' 세븐(seven)' '텐(ten)' 등 큰 소리로 각자의 답을 얘기하는 아이들과 차례차례 눈을 맞춘 그는 칠판에 원을 하나씩 그려 나갔다. 7개의 크고 작은 원으로 딱정벌레를 형상화한 뒤 아이들에게 자신의 스케치북에 그림을 따라 그리게 했다. "Fill circles with your favorite colors(이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색으로 원을 색칠해봐요)." 몇 분이 지난 뒤 아이들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서툰 영어로 자신이 그린 딱정벌레에 대해 띄엄띄엄 설명했다. 바닷물에 비친 파란색의 딱정벌레부터 김치를 먹어 새빨갛게 변한 딱정벌레까지….아이들의 동심만큼 순수하고 기발한 설명에 청년은 얼굴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섬지역 학생들에게 영어교육 기회 확대

이 외국인 청년은 뉴질랜드 출신의 리처드 존씨(31).뉴질랜드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건너와 6년의 영어강의 경력을 가진 원어민 영어강사다. 그가 여수에서 초 · 중 ·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다. 여수에서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GS칼텍스는 2007년 지역 내 사회공헌을 위해 여수 주변 섬지역 학생들을 상대로 원어민 영어교실을 운영하면서 존씨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존 맥클린톡씨(37)를 교사로 채용했다. GS칼텍스의 영어교실 사업은 도시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국인을 접하기 어려운 섬지역 학생들에게 영어교육 기회를 넓혀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영어교육이 실시되기 전 섬지역 학생들은 녹화 방송을 통해 영어교육을 받는 게 전부였다. 도시에 비해 노동 강도가 센 섬지역 근무를 자청하는 원어민 강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섬지역 근무를 지원한 강사들도 간혹 있었지만 1~2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해당 지역 교육청의 예산 부족으로 더 많은 돈을 주며 원어민 강사를 붙잡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여수에 가장 필요한 사회공헌 사업을 찾던 중 우연히 이 같은 얘기를 듣고 영어교실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명의 원어민 강사에게 주는 특급 대우의 강사비와 주택 구입비,교통비 등을 모두 부담하고 있다.

◆흥미 위주의 영어학습 인기두 명의 원어민 강사는 학기 중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연도 안도 금오도 화개도 등 여수 주변 7개 섬에 있는 22개 초 · 중 · 고등학교를 돌며 영어학습을 실시한다. 수업은 1회당 2교시(90분)씩 이뤄진다. 학교 수가 많다보니 강사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배를 타고 다른 섬으로 옮겨다녀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GS칼텍스는 아예 강사를 태워 나르는 배를 장기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방학 기간 중에는 여수 시내 지역아동센터를 돌며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특별 영어교실을 운영한다.

수업은 단기 영어학습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교재 없이 '빙고게임' 등 놀이형식을 빌려 진행한다. 영어강사가 영어 단어에 빈칸을 만들어놓으면 학생들이 강사와 대화를 나누며 알파벳 단어를 하나씩 맞추는 방식이다. 올해까지 섬마을 원어민 영어교실에 참가한 학생 수는 총 520여명에 달한다. 올해도 40여명의 초등학교 학생을 추가 교육대상에 포함할 예정이다. 방학을 이용해 영어교실에 참가한 강지은양(12 · 나진초등학교)은 "처음에는 영어로 말하는 게 어려웠지만 선생님이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이제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지역 사교육비 절감에 도움올해로 4년째를 맞는 GS칼텍스의 원어민 영어교실은 지역 사회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영어교육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어 학부모들과 학교 교사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이춘호 화태초등학교 교장은 "섬 지역 학생들은 열악한 교육 여건상 일반 과외를 받는 게 어려운 현실"이라며 "많은 비용이 드는 원어민 영어과외를 받기가 힘들었는데 섬마을 원어민 영어교실 덕분에 여수 도서지역 학생들이 영어학습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GS칼텍스는 원어민 영어교실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영어에 소질이 있는 우수 학생을 선발,해외연수 기회를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권준오 GS칼텍스 대외협력팀 부장은 "섬지역 학생들이 원어민 교사와 함께 생활하면서 다른 문화를 접하고 경험하면서 지역 인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수=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