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키코 불공정 계약 아니고 설명의무 위반 없어"

본안 소송 첫 판결
피해中企 "일방적…항소할 것"
은행측 "기업 책임 당연하다"
"약속은 지켜져야 합니다. "

키코(KIKO)소송 담당재판부인 임성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 부장판사는 8일 첫 1심 재판결과를 선고하면서 이 한마디로 분쟁을 정리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중에 발생했다는 이유로 계약(약속)을 무효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는 판단이다. 소송 제기 후 1년여 동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미국 뉴욕대 로버트 엥글 교수)까지 동원하며 '키코가 은행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상품'이라는 점을 주장한 중소기업들은 임 부장판사의 한마디에 고개를 떨궜다.


◆"불공정 계약 아니다"

키코 사건의 주요 쟁점은 △키코가 불공정 계약이냐 △은행이 기업을 속였느냐 △은행이 설명의무를 다했느냐 등 크게 세 가지였다. 법원은 모두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계약의 불공정성에 대해 재판부는 "환율 변동성이 낮은 경우라면 가입자가 상당한 범위 내에서 환위험 회피를 할 수 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엥글 교수가 지난해 12월 증인으로 나서 "키코계약의 불공정성을 의뢰한 17개 기업 가운데 은행의 기대이익이 기업의 기대이익보다 1624배나 높게 계약을 체결한 곳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재판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것일 뿐"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수산중공업 측은 환율이 상승하면 무제한의 손실을 본다고 주장하나 수출기업은 보유한 외화 현물에서 이익을 보기 때문에 손실이 상쇄된다는 점도 엥글 교수가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은행이 기업을 속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은행이 별도의 수수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했거나 계약 구조에 은행의 이익이 내재해 있다는 점을 명시하지 않았다 해도 기업이 착오를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은행의 설명의무 위반도 "계약 체결 당시 2008년 이후 환율이 급등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구체적 예견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와 별도로 우리은행과 씨티은행이 수산중공업을 상대로 낸 반소(反訴)에서도 "수산중공업은 계약 해지에 따른 결제금 3억1000만원을 은행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할 것" vs "당연한 판결"황현규 수산중공업 부사장은 "오랫동안 금융거래를 맺어온 은행이 강력하게 추천했기 때문에 별 탈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했을 뿐"이라며 "수산중공업이 키코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만큼 항소를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담당재판부가 기업들이 요청한 은행의 자료공개 요구까지 묵살한 채 서둘러 일방적인 판결을 내렸다"며 "이번 판결에 당연히 항소하는 한편 피해기업들과 함께 추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환율 오름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2008년 3월부터 수산중공업 측에 키코 계약을 청산하자는 권유를 했었다"며 "회사 측이 결정해서 생긴 일인 만큼 당연한 판결로 본다"고 말했다. ◆키코상품은

키코는 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이다. 환율이 일정 구간 안에서 움직이면 기업이 이득을 보지만 환율이 상승할 때는 기업이 손실을 보게 돼 있으며 환율이 하락할 때는 은행이 손실을 보게 돼 있다. 2008년 하반기 환율이 치솟자 기업들은 대규모 손해를 입었다. 기업들은 손실 정도와 가능성이 기업 측에 터무니없이 불리하게 돼 있다고 주장해왔다. 작년 12월까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된 키코 관련 소송은 모두 124건이며,이 가운데 6건만이 소송이 취하됐거나 조정으로 마무리됐고 현재 118건이 법원에 계류 중이다.

임도원/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