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직진후 좌회전'…급브레이크 소동

신호등이 사람잡네!…1627곳 중 420여곳만 시범운용
교차로마다 신호방식 달라 '혼란'
홍보부족…연말돼야 모두 적용
#사례1.9일 오전 9시 서울 종각 앞 종로1가 교차로.좌회전 신호가 끝나자마자 택시 한 대가 앞으로 튀어 나왔다. 좌회전 후 당연히 직진 신호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택시기사가 미리 출발한 것.하지만 신호등에는 녹색등이 아니라 적색등이 들어왔다. 놀란 기사는 급브레이크를 잡았고 택시는 사거리 중간에 멈춰섰다. 무심코 택시를 뒤따르던 차량들도 '돌발사태'에 일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사례2.비슷한 시각 서울 양천구 신정동 남부지방법원 부근 교차로.종각 교차로와 반대 현상이 빚어졌다. 좌회전 신호 후 녹색등이 켜졌지만 앞선 차량은 머뭇거렸다. 직진 신호인데도 차가 움직이지 않자 뒷차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렸다. 그제서야 앞차는 서서히 움직이며 교차로를 통과했다. 최근 전국 교차로에서 '좌회전 후 직진'과 '직진 후 좌회전'이 혼용되면서 운전자들이 놀라 급정거하거나 접촉사고를 내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10여년 동안 운전자에게 적용돼 온 '좌회전 후 직진'이 '직진 후 좌회전'으로 단계적으로 바뀌면서 나타나고 있는 위험한 현상이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9일 현재 '직진 우선'원칙에 따라 시내 '좌회전 후 직진교차로'1627곳 중 420여곳이 '직진 후 좌회전'으로 변경됐다. 경찰은 오는 3월 말까지 시내 주요 교차로의 신호등 체계를 바꾸고 연말까지 모든 교차로에 '직진 우선'원칙을 적용할 방침이다. 전체 교통량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직진 차량에 신호를 우선 주는 것이 사고를 줄이고 교통 흐름도 좋아진다는 경찰청의 '교통운영체계 선진화 방안'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신호체계 변경과 단계적 시행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아 사고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교차로 주변엔 신호 체계 변경을 알리는 플래카드나 표지판을 찾아보기 어렵다. 택시기사인 성기호씨(37)는 "신호 체계가 변경된다는 뉴스와 안내 플래카드를 본 적이 거의 없다"며 "신호가 헷갈리면서 좌회전 차량과 반대편 직진 차량이 부딪히는 접촉사고를 여러 건 봤다"고 전했다. 버스 기사 박모씨(48)는 "교통정보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 자가용 운전자와 습관적으로 운전하는 택시기사들이 급정거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아 교차로에선 늘 긴장이 된다"며 "교통방송을 통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작년부터 홍보에 나섰지만 기존 신호 체계에 익숙한 운전자들이 미리 예측하고 출발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아 교차로 근처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은 다소 높아졌다"면서 "홍보와 사고 예방을 위해 출퇴근 시간에 교통 경찰관을 집중 배치하고 주요 지역에 신호 체계 변경 사실을 알리는 표지판을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