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갤러리] 서정주 '매화'


梅花에 봄사랑이 알큰하게 펴난다.
알큰한 그 숨결로 남은 눈을 녹이며
더 더는 못 견디어 하늘에 뺨을 부빈다.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梅花보다 더 알큰히 한번 나와 보아라.

梅花향기에서는 가신 님 그린 내음새.
梅花향기에서는 오신 님 그린 내음새.
갔다가 오시는 님 더욱 그린 내음새.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梅花보다 더 알큰히 한번 나와 보아라.서정주 ‘매화’ 전문

고장난 자동차처럼 멈춰섰던 정염을 꿈틀거리게 한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미당의 마력이다. 춘설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를 보고 상사병의 미학을 추려내는 그의 상상력은 정말 알큰하다. 매화보다 봄사랑보다 더 알큰하다. 연분홍 첫사랑의 추억을 후벼판다. 미당 시는 이처럼 치명적이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길어올린 영혼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매화 시 가운데 이 작품이 가장 좋은 까닭이다.

남궁 덕 문화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