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금융선진화, 방패보다 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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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강자들 亞시장서 각축'금융선진화를 위한 비전 및 정책과제'가 발표됐다. 금융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국내 금융회사 글로벌화를 중심으로 한 금융비전의 발표는 제조업에 비해 낙후된 한국 금융업의 발전을 위한 일대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銀 민영화 등 역량강화 시급
비록 한국금융연구원 등 3개 연구원 명의로 발표됐지만,금융위원회와 교감 속에 이뤄진 이번 금융선진화 대책은 금융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한 전방위 고민과 방향을 담고 있다는 데서,일부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그 귀추와 정책화 방향이 주목된다. 현재 전 세계 금융시장에는 2008년 발 세계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형성되고 있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다. 하나는 '대마불사에 따른 위험'방지를 위한 미국 중심의 규제강화 움직임,즉 수세적 흐름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신 금융패권을 향한 아시아시장 진출확대'라는 공세적 흐름이다.
'볼커 룰'로 불리는 규제강화 조치는 지난 금융위기 같은 대형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미국이 꺼내 든 방패다. 상업은행의 초대형화 제한,자기계정 거래 금지와 투자은행과의 분리 등 규제규준을 통해 '대마불사'의 구조적 위험요인들을 사전 제어하겠다는 고육지책이다. 그 기본 취지와 정신은 옳지만,우리 금융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국내 은행들은 오히려 '규모의 경제'를 살리고,해외진출로 '금융의 삼성전자'를 키워야 할 숙원의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아시아 시장 진출확대를 중심으로 한 신금융패권 다툼은 금융시장 지도를 새로 그리고 있는 눈 밝은 글로벌 은행들의 공세적 움직임이다. 세계 경제 무게 중심이 서구로부터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음을 간파,아시아에 창을 집중해 겨누는 모습이다. 서구 최대은행인 영국 HSBC는 2월 초 CEO를 런던에서 홍콩으로 전진배치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시장 조기장악을 위한 전략적 이동이다. 호주 ANZ은행도 '팬아시아 야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2012년까지 아시아시장에서의 수익목표 20% 달성을 위해 중국,인도,인도네시아 등으로 진출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영국 RBS은행 아시아 6개국 네트워크를 인수한 것은 그 공세의 구체화다. 아시아 강자를 꿈꾸는 싱가포르 DBS은행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말 씨티은행 출신 CEO를 영입하고,향후 5년 내 총수익의 60%를 중국,동남아 등 국외 아시아시장에서 거두겠다는 야심을 밝히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 대형화,글로벌화로 성공을 이루며 전 세계 금융업 모델로 자리한 스페인 산탄데르은행도 중국건설은행과의 합작을 위해,4월 회장 에밀리오 보틴이 직접 중국을 방문한다. 산탄데르의 아시아 진출을 알리는 서막이다.
'아시아의 금융리더로 도약하자'는 이번 금융선진화 비전은 그래서 국내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전의 달성을 위해서는 개별 금융회사들의 태도와 준비 여하가 중요하다. 기업가 정신의 무장,해외시장을 잘 아는 전문가의 영입,글로벌 원정조직의 발족 등 철저한 사전 대비가 필요한 이유이다. 오늘같이 정부역할이 커진 금융시장에서는 정책당국의 방향설정과 추진의지도 결정적 관건이 될 것이다. 우리금융 민영화에 글로벌 경영능력을 갖춘 참주인을 찾아내고,글로벌화 추진 후보은행을 엄선하고,국부 일부를 투자재원으로 금융지원하는 일 등은 정부의 소임이다.
방패를 들 것이냐,창을 들 것이냐. 위기 이후 새로운 금융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국내시장에 자족하는 금융후진국으로 남을 것인 지,아니면 아시아시장부터 제패해 들어가는 금융강국으로 떠 오를 것인지,그 선택과 결단이 오늘 우리의 몫이다.
박동창 < 한국글로벌금융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