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강남大戰] 상위 5% 고객이 매출 95% 좌지우지… '슈퍼 파레토 법칙'

10억 이상 투자한 슈퍼부자들 맞춤형 자산 컨설팅 원해 고액 수수료 기꺼이 지불
"새로운 캐시카우 찾아라"
금융권 미래 걸고 한판승부
은행 · 증권사들이 자산관리시장을 잡기 위해 강남 VIP 마케팅에 집중하는 이유는 소수의 최상위 고객에 집중하는 것이 전체 매출과 수익성을 늘리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VIP 고객을 타깃으로 2007년 11월 문을 열었던 신한금융투자 명품PB강남센터의 경우 PB 6명이 1년 만에 1조원 가까운 자금을 유치,관리한 것에 힘입어 개점 첫해부터 흑자를 내는 데 성공했다. 통상 지점이 2~3년은 지나야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을 고려하면 '부자 공략'전략이 들어맞았던 셈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이제까지 상위 20%의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는 이른바 '파레토 법칙'이 득세했지만 지금은 이보다 더 소수의 고액자산가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실제 국내 시중은행 한 곳이 고객별 수익기여도를 조사한 결과 상위 1% 고객이 전체 예금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상위 10% 예금자가 은행 전체 수익의 90%를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영식 삼성증권 VVIP마케팅사업부장은 "요즘은 80 대 20의 '파레토 법칙'에서 한 단계 더 진화된 95 대 5라는 '슈퍼 파레토 법칙'이 더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상위 5%에 속하는 고객의 매출과 수익이 전체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VIP 시장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고액자산가보다 더 상위층인 30억원 이상의 '초고액자산가(HNWI=High Net Worth Individual)' 1명을 확보하면 지점 한 곳이 먹고 산다는 말까지 나온다.

◆고액자산가 2015년엔 17만명 예상

10억원 이상 금융자산을 보유한 고액자산가 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8년 증가세가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BoA메릴린치의 세계 부자보고서(월드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의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고액자산가는 2007년 11만8000명으로, 2003년 이후 5년간 연평균 16% 정도씩 불어났다. 2008년엔 10만5000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지만 증시가 회복되면서 2009년 말엔 다시 13만명으로 증가했을 것으로 삼성증권은 추정했다.

신재영 대우증권 강남지역본부장은 "고액자산가는 올해 13만명을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되며 2015년에는 17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업계 수익성 한계 벗어날 '탈출구'
금융회사들이 VIP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은 수익구조가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점도 큰 요인이다.

증권사는 주 수익원인 주식중개(브로커리지) 부문에서 수수료가 싼 온라인 비중이 61.2%(작년 9월 말 기준)나 돼 이미 수익성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온라인 거래수수료는 오프라인 수수료의 30분의 1 수준인 0.015%까지 낮아진 상태다. 은행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착화하고 있는 저금리 기조 속에 순이자마진(NIM)이 2% 밑으로 추락할 정도로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다.

'프리 이코노미'(공짜 경제)의 저자 크리스 앤더슨은 모든 산업의 빠른 디지털화로 수수료가 결국 '0'으로 수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공짜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일부 서비스를 유료화해서 돈을 버는 '프리미엄(Freemium=Free+Premium)' 모델이 작동하게 될 것"이라며 "'프리미엄 모델'은 5%의 사용자들이 95%의 나머지 사용자들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가 PB서비스 확대

이에 따라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프리미엄형 PB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다. 수수료 인하나 우대금리 제공 등에서 벗어나 1 대 1 맞춤식 자산관리라는 고가의 서비스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특히 초고액자산가들은 자산을 안정적으로 굴리는 데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신흥 부촌으로 부상한 도곡동 대치동 일대 고객들은 높은 교육 수준과 전문지식을 갖고 있지만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제대로 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원하고 있다. 구본성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강남 '슈퍼 부자'들은 자신의 연령이나 자산 구조, 규모에 따라 개별적인 서비스를 제공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한금융투자 명품PB강남센터장을 거쳐 WM(자산관리)부를 맡고 있는 현주미 부장은 "고액 자산가들은 온라인 수수료의 수십배에 이르는 오프라인 수수료를 주식투자 컨설팅에 대한 대가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재복 한국투자증권 강남지역본부장은 "지금까지 증권사나 은행의 PB영업은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구색 맞추기' 수준이었다"며 "앞으로는 고가 서비스를 지향하며 '캐시카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