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게임중독

일이나 공부는 물론 운동,친구 사귀기에도 별 관심이 없다. 게임을 하지 않을 땐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모든 걸 잊고 몰입하게 된다. 격투기에서 엄청난 힘으로 상대방을 눕힐 때 쾌감을 느끼고,전쟁게임에서 적들을 섬멸하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성취감을 맛본다.

현실 감각이 뚝 떨어지면서 주로 게임의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내용이 폭력적이고 잔인할수록 희열이 커지는 게 보통이다. 가끔 게임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다시 게임기 앞에 앉게 된다. 인터넷 게임중독자의 일반적 모습이다. 게임중독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행정안전부 조사 인터넷 중독자 200여만명의 상당수가 게임에도 중독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본인이 중독됐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의지력이나 사회적응력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쉽게 반복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독이 심해지게 된다.

당연히 게임 중독에 따른 폐해도 커지고 있다. 닷새 동안이나 PC방에서 식사도 거른 채 게임에만 몰두하던 30대 남자가 숨지는가 하면 한 20대가 게임을 말린다는 이유로 친어머니를 살해하는 충격적 사건도 발생했다. 범행 직후 태연하게 TV를 보다 집을 나와 다시 게임을 했다니 중독의 위험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게임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김상은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인터넷게임 중독은 마약 중독과 같은 '의학적 질환'이다. PET(양전자 방출 단층촬영)를 통해 인터넷게임 '보통 사용자' 9명과 '과다 사용자' 11명의 대뇌를 측정 · 비교했더니 과다 사용자들의 경우 합리적 의사결정,충동조절 등의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한다. 게임중독자와 마약중독자의 대뇌신경학적 메커니즘이 비슷하다는 얘기다.
영국 인터넷게임중독 치료소의 책임자 브라이언 더들리는 게임을 못하게 막는 등의 단순한 방법으로는 중독을 치료하기 어렵다고 본다. 환자 스스로 중독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별도의 정신의학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 ·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과 같다)'이라 했다. 중독에 이르기 전에 게임시간을 알아서 줄이는 게 최선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