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양일선 "해외교포 한식당 잇는 세계적 네트워크 만들겠다"

양일선 한식세계화추진단장

佛 코르동블루·美 CIA 등 세계적 요리학교에 한식 커리큘럼 넣을 것
비빔밥처럼 전통·실용 조화 이뤄야 세계인 입맛 잡아

2009년은 한식(韓食) 산업에 있어 일대 전환기였다. 막걸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해외에서 한식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데에는 지난해 5월 발족한 '한식세계화추진단'의 힘이 컸다. 추진단은 한식을 일식 · 양식 등에 견줄 만한 '글로벌 푸드'로 만들기 위해 민 · 관 · 산 · 학이 함께 모여 만든 공동 태스크포스(TF).그 중심에는 양일선 한식세계화추진단장(60 · 연세대 식품영양학 교수)이 있다. 그는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공동 추진단장을 맡아 우리 음식의 글로벌화를 주도했다.

40년간 식품 · 외식업계에 몸담은 이력답게 양 단장은 섬세하면서도 맛깔스런 일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 이 때문일까. 그는 이달 1일 연세대 125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부총장에 올랐다. 양 단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전통에 뿌리를 둔 새로운 한식을 개발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이라며 "느리지만 꾸준하게 한식세계화를 추진해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한식세계화추진단이 출범 10개월을 맞았습니다. 중간평가를 한다면.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일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입니다. 5개 정부 부처가 음식이란 사소한 소재를 핵심 정책사업으로 채택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국민들 사이에서 한식 세계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도 지난 10개월간 거둔 알찬 성과죠."

▼한식이 글로벌 푸드로 성장할 수 있는 강점은 뭐라 보십니까. "무엇보다 한식은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음식입니다. 약식동원(藥食同源: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의 사상이 배어 있죠.재료나 조리법도 서양식에 비해 자연친화적이어서 최근의 웰빙 트렌드와도 맞습니다. 우리 음식이 지닌 매운맛도 세계무대에서 통할 장점 중 하나죠.일본의 카레,멕시코음식처럼 한국의 매운맛도 계량화한다면 외국인들에게 충분히 통할 수 있습니다. "

▼해외전문가,외국인은 한식세계화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요.

"얼마 전 세계적 요리사인 존 니호프 미국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교수를 비롯해 8개국 전문가를 국내에 초청해 우리 음식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어요. 장점도 있지만 단점에 대한 지적도 많더군요. 대표적으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리는 과도한 상차림과 여럿이서 함께 찌개나 전골을 먹는 식(食)문화 등은 단점으로 꼽혔어요. 고급스런 이미지가 부족하다는 점도 그렇고요. 반면 김치와 장류 등 발달된 발효음식 등에선 후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식재단이 곧 설립될 예정이죠.

"그렇습니다. 세계화추진단이 의사결정기구라면 한식재단은 실행기구라고 할 수 있죠.이달 말에 재단이사장이 선정될 예정이에요. 재단이 설립되면 해외 진출을 꾀하는 한식업체 지원을 늘리고 시장조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입니다. "

▼올해 추진단의 주요 활동 계획은 어떻게 정했습니까. "일단 프랑스의 코르동블루나 미국 CIA와 같은 세계적인 요리학교의 커리큘럼에 한국음식을 넣으려고 합니다. 일식 태국식 베트남식은 다 있는데 한식은 없거든요. 또 해외 주요 도시에 한식을 소개하는 거점식당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우리 교포가 해외에서 운영하는 한식당을 잇는 네트워크를 만들 생각도 하고 있어요. 가칭 한식당 협의체를 구성해 식자재를 공동 구매하고 식당 인테리어의 표준화를 추진할 생각입니다. "

▼사실 해외에 있는 한식당은 찾기도 힘들 뿐더러 음식도 차별점이 없지 않나요.

"맞아요. 대부분이 영세하고 열악합니다. 수준 높은 식당이 몇 개 안되죠.더 큰 문제는 일본이나 중국이 한식당으로 무한확장을 꾀한다는 거죠.일본의 경우 김치를 '기무치'로 만들어 팔듯이 한식당도 자기네들 것인 양 세웁니다. 중국에서도 대장금,수라온 같은 한식당이 있지만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이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

▼음식의 세계화를 먼저 이룬 것은 일본입니다. 벤치마킹할 점은 무엇일까요.

"일본음식이 세계로 퍼져나간 것은 짧은 시간에 이뤄진 게 아닙니다. 1960년대부터 정부와 민간이 함께 노력한 결과죠.일본 정부는 '외식산업종합조사연구센터'란 조직을 만들고 민간에선 '일본식 레스토랑 해외보급추진기구(JRO)'를 만들었어요. 투자도 엄청나게 했죠.스시의 경우 쌀알 개수까지 표준화하고 회전스시,스시로봇 등도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글로벌화에 성공한 거죠."

▼음식을 알리는 것은 결국 문화를 전파하는 것 아닐까요.

"맞는 말입니다. 아시아에서 음식의 글로벌화를 이룬 나라 중 한 곳이 태국입니다. 태국 식당에 가보면 전통의상 · 토산품 등으로 온통 내부를 장식해놨어요. 음식을 먹으면서 문화까지 한꺼번에 느끼게 하려는 배려인 거죠.우리도 한식에 문화를 담아 전하는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고 봐요. "

▼한식세계화의 개념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전통에 충실해야 하느냐,외국인 입맛에 맞는 퓨전식을 만들어야 하느냐의 문제인데요.

"개인적으로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음식을 만드는 게 한식 세계화라고 봐요. 우리 입맛에 맞다고 해서 외국인들에게 그대로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다만 변화를 주되 정체성을 잃어선 안되겠죠.국적을 상실할 정도의 퓨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법고창신(法古創新 · 옛것에 토대를 두면서 새것을 만드는 것)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실용적 음식'이란 어떤 것입니까.

"2년 전 뉴욕 맨해튼에 갔을 때 테이크아웃(Take-out) 음식가게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태국 음식,베트남 음식,일본 음식을 손쉽게 주문해 먹는데 너무 싸고 맛있더군요. 그런데 한식은 메뉴에 없어요. 테이크아웃에 필요한 용기와 음식 개발이 안된 거죠.음식을 세계화한다는 건 결국 어떻게 팔 것인가라는 마케팅의 문제입니다. 품격 있는 전통한식도 있어야 하지만 대중지향의 테이크아웃형 음식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죠."

▼막걸리,떡볶이 외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우리 음식은 뭐라 생각하십니까.

"일본하면 스시,태국하면 톰얌꿍(일종의 수프)을 떠올리듯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음식으로는 비빔밥을 들 수 있습니다. 다른 한식처럼 재료가 고정돼 있지 않아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만들 수 있거든요. "

▼11월에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한식을 알릴 좋은 기회 아닐까요.

"물론이죠.아직 메뉴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조리전문가들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상회의 만찬 준비를 하려 합니다. 무엇보다 연회용 메뉴를 개발하는 게 시급합니다. "

▼앞으로 추진단의 활동 계획은.

"어떤 문화를 세계화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죠.1~2년 사이에 이뤄질 일이 아닙니다. 한식세계화도 단시간에 성과를 내려 욕심내지 않고 느리지만 꾸준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 양일선 추진단장은국내 식품 · 외식업계의 전문가로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력도 화려하다. 연세대에서는 식품영양학 교수에 이어 여학생처장,생활관장,사회교육원장,교무처장 등을 거쳐 이달 1일에는 사상 첫 여성부총장에 올랐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대한영양사협회 회장을 맡아 영양교사제도를 도입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2006년엔 영양정책 수립 및 영양사 양성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1950년 서울 출생 △연세대 가정대학 · 가정대학원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박사(외식 · 급식경영학) △연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대한영양사협회장 △한국영양사교육협의회장 △대한가정학회 회장 △한식세계화추진단 민간단장(현) △연세대 교학부총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