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1달러 도둑과 표 도둑

워싱턴의 중심가인 백악관 근처에서 값싼 길거리 주차 서비스를 한 시간 이용하려면 2달러어치의 동전을 미터기에 넣어야 한다. 2달러는 25센트짜리 8개다. 미리 충분한 동전을 준비하고 다니지 않으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길거리 주차비는 2008년 시간당 1달러에서 두 배 인상됐다.

워싱턴과 접한 버지니아주의 덜레스 국제공항으로 가는 267번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겪은 일이다. 구간 요금이 50센트였는데 올해부터 75센트로 50% 인상된 것을 뒤늦게 알았다. 동전이 없어 20달러 지폐를 건넸더니 여직원이 거스름으로 1달러 짜리 19장을 소리내 세었다. 집에 도착해 확인해보니 18달러였다. 실수를 가장한 여직원의 고의인지 알 길은 없었다. 여기 저기서 요금이 올라간다고 여겨지던 판에 눈이 번쩍 띄는 일이 생겼다. 지난 1일 미국 재무부로부터 '세금환급 통보' 이메일이 날아왔다. '지난해 회계정산한 결과 당신은 규정에 따라 935.31달러를 환급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결정했다. 관련서류를 작성해 보내면 8~9일 후 처리된다'고 돼 있었다. 재무부 산하 국세청(IRS)의 로고와 고위 책임자의 이름까지 명시했다. 국세청 홈페이지는 이메일로 환급통보를 하지 않는다고 금융사기 주의를 당부했다.

외국인에게도 짜증이 쌓이고,불신이 깊어지는 일들은 미국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세수 부족,재정적자가 드리운 그림자다. 워싱턴시는 올해 회계연도에 1억400만달러,버지니아주는 42억달러의 재정적자가 날 것으로 추정됐다. 연방정부는 1조5560억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대 재정적자를 예상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정부가 지불해야 할 국채 이자만도 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343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집권 2년차로 접어든 오바마 대통령에게 재정적자는 난제 중 난제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주정부는 연방정부에 손을 벌린다. 미국주지사협회의 짐 더글라스 버몬트 주지사는 올해 36개주가 세수 부족을 이유로 초 · 중 · 고 교육지원비를 끊었다고 토로했다. 경기침체는 메디케이드(저소득층과 장애인용 의료보험) 가입자 수를 불려놨고,주정부들은 재정적자 탓에 메디케이드의 혜택과 지원을 줄이고 있다. 연방정부는 2011년 각종 사회보장,메디케어(65세 이상 노인 대상의 의료보험),메디케이드에 쏟아붓는 지출이 총지출액의 39.5%를 차지할 것으로 추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뿔이 날 대로 났다. 재정적자를 줄이겠다고 의료보험 개혁안을 내놨지만 의회에서 교착된 상태다. 재정적자 특별대책위원회를 의회가 자율적으로 구성하라고 했으나 상원이 법안을 부결시켰다. 그는 보다 못해 행정명령을 통해 특위를 만들었다. 정부가 임명할 일부 대책위원에 민간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앉히는 방안도 고심 중이다.

특위라고 마법의 지팡이를 갖고 있지는 않다. 세금을 올리든지,지출을 줄이는 게 상책이다. 특위가 소비세와 부가가치세 인상을 포함한 다양한 안을 검토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11월 의회 중간선거가 끝난 후인 12월1일까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정부의 세금 인상은 유권자를 표 도둑으로 돌변케 하는 지름길이다. 재정적자는 재선을 노릴 오바마 대통령의 용기를 시험대에 올려놨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