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법원서 바라본 재건축 비리

법원은 기자 입장에서 매력적인 출입처다. 막 접수된 소장이나 갓 나온 판결문을 들추다 보면 평소 접하기 힘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잇단 소송에 휘말리고 있는 재건축 · 재개발 사업과 관련된 판결들을 보면서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 없다. 검찰 수사와 처벌이 반복되는 만큼 이제는 좀 투명해질 때가 된 것도 같은데 오히려 비리 유형은 다양해지고 행태는 더욱 과감해지고 있어서다.

검찰에 적발된 재건축 · 재개발 조합장들의 비리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고 있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사업이 끝난 서울 송파구 모 재건축단지에서는 구속되지 않은 조합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이 하청을 대가로 돈을 받거나 공금을 빼돌렸다가 걸렸다. 구속된 조합장들이 뒤로 빼낸 돈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00억원에 달했다. 어지간한 사업장은 총사업비 규모가 1조원을 훌쩍 넘는 마당이니 이런 저런 유혹도 많고 견뎌내기도 힘들 것이라는 짐작은 간다. 그래도 100억원은 너무 심했다. 건설사들도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이다. 재건축 · 재개발 사업 시공사를 선정하는 과정은 1960~1970년대 국회의원 선거와 흡사하다. 최근 경품을 뿌리려다 법원 제지를 받은 서울 노원구의 한 조합은 총회 참석 조합원에게 15만원 상당의 전기밥솥을 주고 이도 모자라 추첨으로 LCD TV 등을 나눠줄 예정이었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시공사로 선정된 건설사가 부담하는 조건이었지만,그걸 곧이 곧대로 믿으면 바보다. 시공사가 이런 비용을 조합원들에게 전가시키지 않을 리 없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재개발구역에선 시공사가 불과 5개월 만에 총공사비를 1180억원(17%)이나 올렸다가 법원의 제지를 받았다. 시공사 선정 땐 수주를 위해 비교적 낮은 공사비를 제시하고 막상 시공사로 선정되면 태도를 바꿔 공사비를 올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재개발 · 재건축 사업에서 자금력이 부족한 조합을 돕는 역할을 하는 정비업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감을 따내기 위해 조합에 로비하고,남이 선점한 지역을 빼앗기 위한 시공사의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현장에서 들려온다. 국토해양부는 2003년 혼탁해진 재건축 · 재개발 사업을 정화한다는 명분으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 시장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법령을 만들며 시공사 선정과 조합추진위 설립 시점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조합원 동의서 양식을 제대로 만들지 않아 추진위 또는 조합의 설립무효 소송 대란을 자초했다. '선계획 · 후개발' 체제는 발빠른 투기꾼들의 배만 불렸다. 야심차게 도입한 정비업체는 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 사이 애꿎은 조합원의 재산은 눈에 띄게 축 나고,사업이 늦어져 아파트 공급부족도 심화될 조짐이다.

재개발 · 재건축 송사와 판결을 계속 지켜보면 이 사업을 민간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공공이 주도하는 체제로 전면 전환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공공 주도의 부작용도 있다. 건설사나 조합의 주장대로 공무원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뇌물을 챙길 수 있다. 그렇더라도 민간이 주도하는 것보다는 나으리라는 게 지금의 심정이다.

조성근 사회부 차장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