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날씨 팔아 돈번다…日 기업들 맞춤 기상마케팅

반도체 공장엔 낙뢰·서핑족엔 파도 정보…
휴대폰으로 날씨정보 전달…레저族 대상 서비스도 활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관직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 된 2006년쯤의 일이다.

이 전 부총리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차에 그와 가까운 이성규 연합자산관리 대표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음식점에 앉자마자 그의 안부부터 물었다. 이 대표는 "곧 일본에 가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부총리 말씀이 일본에는 봄철에 택시기사만을 상대로 판매하는 '벚꽃보험'이 있다는데 그런 기발하고 세밀한 상품을 만들어내는 일본의 힘을 연구해보려는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기후가 나빠 벚꽃이 제대로 피지 않으면 택시 손님이 줄어든다. 그러면 택시기사들은 대목에 예상했던 수입을 올리지 못한다. 이런 택시기사들의 불안을 없애줄 수 있는 금융상품을 만들어낸 일본 금융산업의 풍토가 그의 연구욕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그 후 이 전 부총리의 연구 결과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일본에는 '기후'를 이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성행하고 있다. 최근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기후변화 문제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결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성공을 거두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집중 소개했다. 이들의 승부 비결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세분화하고 특정 부분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마치 택시기사만을 상대하는 벚꽃보험처럼.

◆벼락 바람 강우량…쪼개고 쪼갠 틈새 서비스

대표적인 회사가 '프랭클린재팬'이다. 이 회사는 낙뢰가 언제 어디에 떨어질지를 예보하는 전문업체다. 이 업체의 예보 정확도는 약 90%에 달한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프랭클린재팬 고객은 현재 200여개사에 달한다. 고객은 낙뢰로 인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큰 반도체 공장과 골프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프랭클린재팬은 1년에 64만~100만엔(약 820만~1280만원)의 정보 제공료를 받고 고객들이 미리 정해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반경 200㎞ 내에 낙뢰가 발생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수시로 위성통신을 통해 전달해준다. 오차 범위는 약 500㎡ 이내다.

서비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낙뢰로 피해를 입었을 때 보험사에 제시하는 서류인 '낙뢰 증명서'도 떼어준다. 이 증명서에는 피해 장소가 표시된 지도와 일시 등이 적혀 있다. 증명서 한 통의 가격은 8400엔이다. 이런 틈새 서비스로 프랭클린재팬은 1991년 설립 후 연평균 약 10%의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역 밀착형 날씨예보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도 있다. 일본 북부 아오모리현에 있는 '애플웨더'다. 1999년 세워진 이 회사는 명칭 그대로 아오모리현의 사과 재배 농가들만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지역 토박이로 27년간 기상예보관으로 근무했던 구도 아쓰시 애플웨더 사장은 해안과 산맥에 둘러싸인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사과 농가들이 날씨 변덕에 따른 피해를 자주 입는 사례들을 보며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현재 아오모리현 사과 농가의 약 10%인 2000여곳에 서비스를 제공 중인 애플웨더는 매일 오전 8시부터 세 시간 단위로 기온 강수량 풍속 등의 날씨예보를 팩스로 전달한다. 또 눈이 올 경우에는 1㎝ 단위까지 세세히 알려준다. 19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일본의 기상산업은 광범위한 지역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단순 예보를 벗어나 날씨 유형과 지역 고객들의 특성에 따라 매우 세분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등산,파도타기 등 레저 전용 예보도 등장

최근에는 야외 레저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일기예보 서비스도 인기를 얻고 있다. '서핑족만을 위한 서비스'를 표방하는 회사인 서프레전드는 해변에서 파도타기를 즐기는 고객을 위해 바다의 파도 높이와 풍속 등을 휴대폰으로 시시각각 전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장과 직원 20여명 모두가 전문 서핑족인 서프레전드는 미국 및 일본 기상청의 자료와 100여명의 파도타기 애호가들로 구성된 통신원들의 보고를 예보에 활용한다. 이 회사는 일본은 물론 해외 서핑 명소 240여곳에 대한 날씨 정보까지 고객들에게 전하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특히 1999년부터 일본 이동통신업체 NTT도코모를 통해 서비스하고 있는 월 315엔(약 4000원)짜리 '파도의 전설'은 지난해 말 회원 수가 1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전직 해상자위관 출신인 마쓰다 야스시 사장이 2004년 창업한 메테오테크는 등산객을 겨냥한 기상예보업체다. 이 회사는 날씨가 갑작스럽게 변하는 산악지대의 특성을 고려해 일본 전역의 산을 대상으로 독자적인 예보 시스템을 구축해놓았다. 서비스에 가입한 등반객이 자신이 오르려 하는 산의 날씨를 알고자 하면 해당 고객의 휴대폰으로 산의 고도별 기온과 바람,눈 또는 비가 내릴 확률 등을 자세히 안내해준다.

이미아/김용준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