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종이 생각

벌써부터 태어난 아기의 맨몸에 옷보다 먼저 종이기저귀를 입혀 왔다. 사람은 이렇게 요람에서 종이와 인연을 맺어 영면하는 자리까지 동반한다. 그러나 나는 요람에서 종이를 만나지 못한 세대다. 하지만 타고난 솜씨 덕에 다른 이들보다 일찍 인연을 맺은 셈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40호쯤 되는 동네에서 '연을 잘 만드는 아이'로 소문이 나서 겨울이면 일감이 밀려들었다. 마침 우리 집 뒤란에 식대(시누대) 밭이 있어서 환경도 좋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야 한글을 깨치던 시절이었는데,처음 산 공책의 느낌은 감격 그 자체였다. 종이의 품질이 어찌나 조악하던지 공책에 잘못 쓴 글자를 지우개로 지우러 들면 지레 겁을 먹고 구멍이 나버리는 듯했다. 그러나 연필촉의 끝에 침을 듬뿍 듬뿍 발라가면서 기역 니은,가갸 거겨를 또박또박 박아 쓰는 기분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공책이 나를 개안하게 했다. 살면서 책을 읽어 얻은 감동과 글을 써서 얻은 기쁨이 거기서 비롯된 것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종이의 특별한 모습을 보았다. 1960년대 초에는 서울에도 대단한 집에나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는데,남쪽땅 도청 소재지에 있는 중 · 고등학교의 교사 안에는 여러 곳에 설치돼 있었다. 층마다 복도 양 끝에 하나씩 있었다면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한국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 외국 신부님들이 외국인들의 성금으로 성당 짓듯이 지은 학교였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등교 첫날 아침 신입생들이 화장실 앞에 잔뜩 모여 밀고 밀리면서 아우성을 쳐댔다. 출입문 옆 안쪽에 새하얀 원통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거기서 그것을 조금이라도 뜯어가려고들 그랬다. 그것은 그때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화장지라는 것이었고,구호품으로 들어온 외국산이었다. 그날은 내 차례까지 오기 전에 동이 나서 다음 날 새벽같이 등교해 달려갔다. 그것은 순백의 눈부심에 햇솜의 보드라움까지 갖고 있었다. '종이'의 어원인 '죠ㅎ. ㅣ '가 갖고 있는 뜻,'돋는 해처럼 눈부시게 어울러서 만든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것을 '그런 데'에 쓴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에야 나는 종이가 아주 낮은 데서 아주 높은 데까지 사람과 더불어 세상사를 관장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장 더러운 것을 닦아내고,가장 부끄러운 곳을 가려준다. 기쁠 때는 몇십 몇천배 되게 하는 그릇이 되고,슬플 때는 콧물 눈물을 훔쳐준다. 또 소식과 지식을 지니고 민들레 홀씨처럼 만인에게 날아간다. 성인의 귀한 '말씀'을 오래 멀리 널리 전하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혹시나 혼을 모시는 집이 된 날에는 재가 되어 훨훨 날아 하늘에 이르기도 한다. 종이는 사람 사는 세상에 신이 준 축복 중 축복이다.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상문 제지공업연합회 회장·소설가 kpma@pap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