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 700여개 종목 과거·현재 분석…수학적 계산으로 펀드수익률 예측

펀드디자이너 홍융기씨…펀드만들때 아이디어는
책·영화·공연도 훌륭한 '텍스트'
심장병환자 사망확률 응용한 적도
소년은 숫자를 유난히 좋아했다. "1 더하기 1은?"이라고 물으면 '2'라는 정답이 딱 부러지게 나오는 산수의 매력에 반했다. 승용차에 탈 때면 조수석에 앉아 앞차 번호판 숫자의 관계 만들기를 즐겼다. 이를 테면 '3515'라는 번호는 '3×5=15'라는 수식으로 만드는 것.미국 유학 시절에는 도량형의 단위를 굳이 한국식으로 환산해야 직성이 풀렸다. 1갤런이면 약 3.78ℓ,10마일이면 약 16㎞라는 식으로 도량형 환산표를 들고 다녔다.

숫자를 좋아했던 소년은 자라서 '펀드 디자이너'가 됐다. 수학적 계산을 이용해 원하는 수익률을 정확하게 산출해낼 수 있는 펀드를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에 출시된 펀드만 1만개에 육박하는 '펀드 전성시대'.정확한 예상 수익률을 내는 펀드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삼성투신운용의 펀드 디자이너,홍융기 퀀트 전략팀장(39)을 26일 만났다. ▼펀드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생소합니다.

"펀드의 투자전략을 짜는 사람을 말해요. 원하는 만큼의 투자수익을 얻기 위해 돈을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 밑그림을 그리는 거죠.700여개가 넘는 주식 종목의 과거와 현재를 다양한 척도로 비교한 뒤 원하는 수익률을 확률적으로 낼 수 있는 전략을 짭니다. 펀드 매니저들은 그 밑그림 위에 순간순간 상황에 대처해서 펀드를 운용하죠.일반 제조업체의 상품개발팀과 같은 역할이에요. 우리 사무실은 펀드 제조공장인 셈이죠."

▼펀드를 만드는 과정이 궁금한데요. "사모펀드와 일반공모형 펀드의 두 가지 방식이 있어요. 사모펀드의 경우 투자자가 원하는 목표 수익률과 손실률을 제시하며 '이런 구조로 만들어 달라'고 하는 일이 많습니다. 간혹 손실은 전혀 보지 않은 채 수익만 원하는 투자자가 있어서 골치 아플 때도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합리적인 선에서 수익을 원하기 때문에 맞춤식으로 최적의 전략을 짜줍니다. 또 일반 공모형 펀드는 펀드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전략을 생각해내면 거기에 맞는 펀드를 상품화시키는 겁니다. "

▼어렵지는 않나요.

"펀드의 투자전략을 짜는 일은 상당히 어려워요. 1000만원으로 투자할 땐 이익을 낼 수 있는 전략이 100억원,1000억원으로 굴리는 금액이 커지면 소용이 없어요. 큰 돈을 투자하거나 뺄 때에는 시장의 충격이 그 만큼 크기 때문이죠.일반공모형 펀드의 경우에도 하나의 상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까다로운 규정이 많은데 그 중 하나라도 어기면 출시할 수 없으므로 모든 걸 조율하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펀드를 만들 때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습니까.

"책 · 영화 · 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학교 때 배웠던 방법론을 응용한 적도 있죠.대학 시절(미네소타주립대) 병원에서 심장병 환자가 죽을 확률이 얼마인지를 계산하는 전략을 배운 적이 있어요. 체중,가족의 병력,흡연 여부 등 다양한 요인들 가운데 체중보다는 가족력이 더 중요하므로 여기에 가중치를 줘서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죠.이런 전략을 주식에 응용해 보는 거예요. 회사도 현재 현재 매출이 많은 회사,자산이 많은 회사 등 다양하니까요. 따라서 요소별로 가중치를 줘서 통계적인 모델을 만드는 겁니다. 전략이 나오면 과거 데이터를 가지고 사심 없이 분석한 뒤 검증되면 펀드를 만들게 돼요. "

▼돈 버는 전략을 잘 안다면 혼자 투자해서 더 큰 돈을 버는 게 낫지 않나요. "펀드 디자이너들이 짜는 전략은 결코 대박 나는 투자비법이 아닙니다. 자기가 목표한 합리적인 수익률을 적정한 위험을 감내하면서 달성해 돈을 버는 전략이죠.어떤 종목에 투자하면 1000% 올라간다는 식의 투자 비법은 없다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또 펀드 디자이너들이 짜는 전략은 적게는 수십억원,많게는 몇조원을 굴리는 전략이기 때문에 제가 회사를 나가서 혼자 투자한다고 해도 성공할 확률은 낮아요. "

▼가장 기억에 남는 펀드는요.

"지난해 만든 '삼성그룹 밸류 인덱스펀드'인데 한 해 동안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공모펀드예요. 전략을 개발한 건 5년인데 뒤늦게 빛을 본 거죠.다른 인덱스 펀드는 시가총액 비중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 비해 이 펀드는 매출과 자산규모,회사의 영업이익 등 다른 조건으로 구분해서 포트폴리오를 짰거든요. "

▼애써 만든 펀드가 수익을 내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잠을 못 잡니다. 냉정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게 되죠.원인에 따라 처방도 달라요. 일시적으로 그때만 넘기면 나아질 건지,전략을 아예 바꿔야 하는 건지 판단해야 해요. 펀드 출시 후 성과가 안 나오면 자다가도 새벽 3,4시에 항상 깨요. 해외시장 상황을 보려고요. 돈을 넣은 일반 투자자랑 같은 심정입니다. 회사 사람들에게도 미안한 일이죠.제 아이디어를 믿고 상품을 팔아주셨는데 성과가 안 좋으면 면목이 없어 초조하고 불안해집니다. "

▼지난해 금융위기 때 손해를 본 펀드 투자자들도 많잖아요.

"아까운 돈을 잃은 분들이 화를 내는 건 당연하지요. 그런데 지난번 금융위기 때의 문제는 펀드 자체보다 일반 투자자들에게 펀드라는 상품의 속성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비롯된 측면도 커요. 전에 제 아내가 은행에 갔는데 은행원이 '두 대기업의 주가가 50% 이상 안 떨어지면 연 수익률 10%를 보장해 준다. 그렇게 큰 기업의 주가가 50%나 빠질 일이 있겠느냐'며 펀드 가입을 권유했다고 해요. 남편이 펀드 디자이너인데도 아내가 그 말에 귀가 솔깃했다고 해요. 50%가 빠질 경우 얼마나 큰 손해를 보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죠.'손실을 볼 확률은 이득을 볼 확률의 2.5배다'라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20%의 이익이 나는 상품이라면 50%의 손실을 볼 각오를 해야 된다는 거죠.손해 볼 위험 없이 이득만 본다고 하면 그건 사기예요. 지난해 한참 문제가 됐던 키코 상품도 비슷합니다. 거대한 수익을 낼 기회가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가혹한 손해라는 반대급부가 있다는 게 진리예요. "

▼좋은 펀드를 고르는 요령이 있습니까.

"매우 어려운 문제이긴 한데요. 단기 투자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 있는 펀드에 가입하는 게 유리해요. 과거 수익률이 좋다고 해서 가입하면 후회합니다. 재작년에 가장 좋은 수익률을 낸 '톱(top)30' 펀드 중 지난해 '톱30'에 남아있는 펀드는 하나도 없어요. 성과가 올랐다 내렸다 하는 펀드도 피해야 하죠.자기가 언제 환매해야 할지 모르는데 성과의 편차가 크면 손해 볼 확률도 높으니까요. "

▼앞으로의 계획은요. "몇십년이 지나도 살아있는 명품 펀드를 만들고 싶어요. 피터 린치라는 전설적인 펀드 매니저가 만든 '마젤란 펀드'는 30년씩 이어지고 있죠.시류에 편승해 잠깐 반짝했다가 재미 좀 보고 사라지는 그런 펀드가 아닌,제가 은퇴를 해도 대를 이어 갈 수 있는 펀드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

글=박민제/사진=허문찬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