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복마전 교육계] 장학사 인사마다 뇌물·청탁…파벌끼리 '밀어주고 끌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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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학교·각종 이권엔 수천만원 뇌물 오가기도
비리조사 '안으로 굽은 팔'…교육감 선거땐 줄대기 극성
좋은 보직은 '그들만의 리그'
교육계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연초부터 장학사 교직매매 사건이 터진 데 이어 뇌물 수수 사건이 잇달아 드러나고 자율형 사립고 부정까지 불거져 단단히 망신을 당하고 있다. 문제는 '걸린 사람만 재수 없다'는 인식이 교육계에 여전히 만연하다는 점이다.
◆청탁 · 민원은 '관행'?각 시 · 도 교육청 관계자들은 "연말 연초가 되면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쉴 새가 없을 정도"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른바 '민원 전화'다. 교사들은 좋은 지역에 있는 학교나 집 근처 학교로 발령내 달라고 요청하고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원하는 학교에 배정되게 해 달라고 주문한다는 게 교육청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물론 민원이 100%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부탁하는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기 때문에 일단 알았다고 한 뒤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며 "민원이 너무 많아 일일이 거절하는 것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계에 청탁 문화가 뿌리 깊게 깔려 있다는 얘기다.
◆뇌물 익숙해지면 가격 먼저 제시단순한 민원의 정도를 넘어 중요한 사업 이권이나 개인의 경력 문제가 걸려 있다면 '청탁'은 크건 작건 뇌물을 동반하게 된다. 장학사 시험을 앞두고 중학교 교사였던 고모씨(직위해제)가 2008년 초 서울시교육청의 임모 장학사(직위해제 · 구속)에게 2000만원을 준 것이 이런 사례다.
뇌물을 받고 힘을 써 주는 일이 익숙해지다 보면 먼저 정해진 '가격'을 제시하는 일도 왕왕 벌어진다. 서울 남부지검은 초등학교 교장 5명이 방과후학교 컴퓨터교실 운영권을 주겠다며 A사에서 2003년부터 작년 9월까지 각각 700만~2000만원씩 총 6700만원을 받아낸 사실을 적발했다. 일부 교장은 이 과정에서 업체 측에 "학생 1인당 1만원씩 내라"고 요구했고,상납이 늦어질 때는 업체에 트집을 잡거나 운영권을 빼앗겠다고 협박했다. 같은 식으로 서울시교육청에 근무하던 6급 사무직원(구속)은 신형 쏘나타 1대를 받고 학교 시설공사권을 줬다.
◆끼리끼리 문화가 원인교육계 관계자들은 교육비리의 근본 원인으로 학연과 지연 등으로 얽혀 '형님,아우'하는 파벌문화를 지목한다. 상대 파벌을 견제하기 위해 인사에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음성적인 문화가 자리잡았다는 지적이다. 이런 파벌은 자연스레 특정 후보의 교육감 선거자금을 만들어주는 통로로 활용된다. 교육감에 당선된 후에는 자신을 밀어준 파벌 사람들을 챙기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중등 장학사 · 장학관은 서울대 사범대(서울사대) 출신과 공주대 사범대(공주사대) 출신으로 양분돼 있다. 일례로 구속된 임 장학사를 포함해 시교육청 중등인사담당자 중 절반가량은 공주사대 출신이다. 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6월 지방선거에 교육감 후보로 나오는 모 교육장이 '공주사대 때문에 내 앞길이 가로막힌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전했다. 초등은 서울교대 출신들끼리 똘똘 뭉치는 분위기다.
◆솜방망이 처벌과 고발기피 문화이 같은 파벌문화는 뇌물과 인사개입 등 비리를 낳는 원인인 동시에 비리가 적발되더라도 제대로 징계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한다. 서로 감싸주며 쉬쉬하기 때문이다. 징계 수위도 중징계인 파면 · 해임보다 감봉 · 정직 등 솜방망이 처벌이 다수다. 파벌의 방어막 덕분에 성폭력 촌지수수 등은 가볍게 처벌되고 일제고사 거부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파면 해임 등 중한 처벌이 내려지는 '불균형'도 빚어지게 된다.
형사처벌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원 처벌을 어렵게 하는 현행법 때문이다.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은 '교원이 형을 선고받거나 징계처분을 받지 않았을 때는 그 의사에 반해 휴직 · 정직 · 면직을 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 등은 '특정교육비리 가중처벌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배임 횡령 금품수수 등 교육계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과 마찬가지로 무거운 형사처벌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학관 절반 물갈이 한다지만…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 등은 최근 비리 문제가 곳곳에서 불거지자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와 장학사 · 장학관이 주요 지역 교감 · 교장으로 가는 문화를 바꾸겠다는 내용의 비리 대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6일 소속 장학관 절반 이상을 교체하고 '강남 3구'에는 교육전문직을 배제해 일선 학교 교장 · 교감을 배치하는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인사 담당자도 70%가량 교체하고 지역교육청 소속 초 · 중등 교육과장도 대폭 전보 조치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파벌문화를 없애고 학교장과 전문직이 가진 과도한 권한을 줄이기 위한 대책은 되지 못한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한 시교육청 관계자는 "실제로 교육 행정 전문가가 아닌 자리에도 장학사 · 장학관을 앉히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며 "교육 전문가인 교사의 커리어와 교육에 관한 행정 전문가들의 커리어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을 나눠주고 교원인사를 담당하는 행정업무까지 교사 출신 전문직들이 독점하면서 자기 사람 챙기기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아울러 학교에 관한 전권을 휘두르는 '제왕적 교장'과 사립학교 재단을 견제할 수 있는 외부 견제장치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