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동계올림픽] 우리의 딸아, 어떻게 그렇게 당당한가

● 장석주 시인이 본 대관식
우리는 무엇을 보았던가. 우리는 눈앞에서 벌어진 기적을 보았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고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솟아 흘렀다. 김연아 선수가 빙판에 나오는 순간부터 왜 주책없이 눈물은 자꾸 흘러나오던지!

마침내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피겨의 여제(女帝)로 등극했다. 여제가 되기에 한 치의 부족함이 없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없었고 어떤 이변도 허락하지 않았다. 밴쿠버의 빙상 경기장 안에는 오로지 완벽함에의 갈증,아름다움의 황홀경이 순간을 지배했다. 우리가 본 것은 힘과 속도와 아름다움의 조화,피겨의 진화,그리고 새로 쓰여지는 피겨의 역사였다. 김연아 선수,강철의 심장을 그 부드러움 속에 숨긴 바람의 총아(寵兒)!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협주곡 F장조가 흐르는 4분 동안 얼음소녀는 빙판 위에서 안전하게 선회하며,선율에 맞춰 뛰어올랐고,가볍게 날았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당당하게 얼음 위를 지쳐가는 얼음 소녀.민첩하고,섬세하고,우아하게 변하는 손끝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를 쓰는 것만 같았다. 도약은 높이 이루어졌고 회전은 우아하면서도 빨랐다. 공중으로 솟구칠 때 그동안 쏟았던 땀방울들이 금분(金粉)처럼 반짝이며 빙판 위로 떨어져내렸다.

분수(噴水)도 아닌데 분수처럼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 물의 날개를 활짝 펼쳤고,날개를 가진 새도 아닌데 공중에서 오래 떠갔다. 중력의 영(靈)들도 넋이 빠져 잠시 제 할 일을 잊은 듯 공중으로 도약한 소녀를 땅 위로 내려놓을 줄 몰랐다. 트리플 플립,더블 악셀,더블 토루프….이런 것들을 몰라도 김연아 선수는 우리에게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무엇이 우아함인지를,그리고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겨우 견딜 수 있는 무서움의 시작'(라이너 마리아 릴케)임을 실연(實演)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모두의 딸인 너는 얼음 위로 달려나갔고,이제 자랐고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을 만큼 단단해졌고,네 앞의 모든 시련과 수고들을 마침내 꿋꿋하게 이겨냈음을 보여주었다. 흠결 하나 찾을 수 없는 완벽한 경지.과연 세계가 숨죽이고 네가 얼음 여왕으로 등극하는 장엄한 순간을 지켜보았다. 아름다움을 관장하는 하늘의 천사들조차 넋을 잃었다. 이것은 하나의 기적! 오늘 우리는 마음껏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오늘 하루 우리는 의기양양해도 괜찮다. 우리의 소녀는 어떻게 그렇게 대담하고 당당한가? 장하다,김연아 선수! 자랑스럽다,김연아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