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도이치 교수

살아가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때 좋은 안내자를 만나는 건 큰 행운이다. 그 중 한사람,도이치 교수는 내가 1983년 독일 연수 시절 지도교수로 만났으니,알게 된 지 20년도 훨씬 넘었다. 종종 최루탄 때문에 눈물 콧물이 뒤범벅이 되는 까칠한 기억만 가득 찬 나의 1970년대 대학시절에 비해 괴팅겐대에서의 학창생활은 눈부신 천국이라 할 만했다.

도이치 교수는 냉철한 인상이었지만 참 자상했다. 대학 내 의료법연구소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자신의 승용차에 나를 태워 오페라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르면서 하노버에 가서 종일 사법연수생 면접시험을 참관하게 해 준 기억이 새롭다. 대학교수면서 첼레고등법원 판사를 겸하고 있던 그는 바로 옆자리에서 자신이 참여하는 재판을 방청할 수 있게 주선해 주곤 했다. 귀국 후에도 인연은 이어졌다. 가끔 한국을 방문하는 도이치 교수를 만날수록 독일에서 느꼈던 엄격함이나 강인함보다는 따스한 면을 보게 되었다. 내가 법원장으로 근무하던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두 차례 강연을 하기도 했는데,누가 질문이라도 하면 넘치는 생기로 설명을 해 주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난해 그의 팔순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괴팅겐에 갔다. 젊은 시절 대학 강의실에 되돌아와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학술대회 기간 저녁마다 축하회식이 있었다. 통상 우리네 기념논문 증정식이나 그에 따른 축하회식 분위기가 다소 공식적이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데 반해 그곳의 분위기는 자연스러웠다. 축제인양 서로가 즐기고,웃음도 넘친다.

도이치 교수는 80세를 넘긴 거구(巨軀)다. 요즘은 허리가 좋지 않아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다. 그럼에도 학술대회 참석자들에게 90살,100살 때 다시 만나자고 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한 분야에 대한 몰입이 뛰어나다. 그가 집으로 초대한 저녁식사 자리는 조촐하면서도 화기애애했다. 그림이 많았는데,저녁 먹기 전에 자기가 모은 그림들을 소개했다. 하도 진짜 같이 설명을 잘하는 바람에 뉴욕 미술관에서 샀다는 명작의 복사본을 진짜 그림으로 여길 정도였다. 나이 80줄에 접어들었으면서도 1950년대 브레멘항구에서 보름 넘게 배를 타고 뉴욕에 건너가서 유학한 때를 회상하면서,다시 한번 그때처럼 브레멘에서 뉴욕 가는 배를 타보겠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착한 어린이(Wohl Kind)'가 되어 간다는 도이치 교수의 말은 오래오래 음미해 볼 만하다. 늙을수록 지혜로워지나,늙어지니 힘이 없어지고,강인함은 점점 약해지나,차츰 부드러워진다는 것.우리나라에 공부하러,혹은 일하러 온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과연 그 사람들에게도 내가 도이치 교수 같은 사람으로 여겨질까.

이 주 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juhlee@hwaw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