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 의사·한의사 '일반회생' 신청 몰려

치과의사 A씨는 2006년 자신이 근무하던 개인 병원을 인수했다. 자금이 부족했던 A씨는 은행에서 6억원의 신용대출을 받았다. 고가의 의료장비는 장기 대여 계약을 맺어 해결했다. A씨는 투자비를 금세 회수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병원은 3년간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A씨는 20여억원의 빚을 지고 지난해 법원에 회생 신청서를 냈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빚을 감당하지 못해 법원에 구제를 요청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1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빚에 시달리는 전문직 종사자 등을 구제하는 절차인 '일반회생' 신청자가 2006년 22건,2007년 41건,2008년 82건,2009년 176건 등으로 급증하고 있다. 올해도 벌써 30여명이 일반회생을 신청했다. ◆병원 경영난 심화

일반회생은 서민들이 이용하는 '개인회생'과 달리 거액의 빚을 진 사람들이 이용하는 제도다. 채무기준이 무담보 채무 5억원 이상,담보채무 10억원 이상이다. 때문에 신청자 대부분은 과거 소득이 많았던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의료계 종사자들이 경제난을 겪는 이유는 병원 개원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병원이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져 고객을 유치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법원에 따르면 병원 개업 5년도 안 돼 20억~30억원의 빚을 떠안는 경우도 흔하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남동희 판사는 "일반회생 신청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의료계 종사자들로 대부분 무리하게 개원했다 경영난을 견디지 못한 경우"라고 말했다.

그나마 일반회생을 신청하는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빚을 10년 동안 꼬박꼬박 갚아나가면 채무 일부를 면제받아 재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회생을 신청할 여건마저 안 되는 전문직 종사자도 있다. 일반회생을 신청하려면 직업이나 일정한 소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문직 사이에서도 구직난이 심각해 고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이들이 생기고 있다. 30대 한의사 E씨는 한의대를 졸업한 뒤 한의원을 차렸지만 적자가 누적되면서 빚을 감당하지 못해 지난해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빚잔치를 하고도 8억원에 가까운 빚이 남은 데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다.

◆법원 회생인가 심사 엄격법원은 고소득 전문직의 일반회생 인가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한다. 개인회생과 달리 채무자에게 회생계획안을 내도록 하고 채권자들로부터 이에 대한 동의를 받도록 한다. 법원은 이 과정에서 신청자들이 소득이나 변제할 채무를 낮추는 등의 편법 행위를 하는지 꼼꼼히 들여다본다. 또 파산을 신청한 경우라면 파산관재인을 선정해 자산과 부채 등을 면밀히 조사한다. 돈을 빼돌린 뒤 회생을 신청하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정상규 판사는 "의사나 한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의 신청이 들어오면 사회적 지위나 소득을 감안해 서민들의 사건보다 엄격히 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