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대사 "남북한~러시아 잇는 천연가스ㆍ전력ㆍ철도網 사업 구체화"

이윤호 신임 駐러시아 대사 인터뷰

"북핵문제가 진전되면 남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PNG(파이프라인 천연가스) · 전력 · 철도 사업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

이윤호 신임 주러시아 대사(62)는 지난달 28일 러시아로 출국하기에 앞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러시아는 이 같은 방안을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바겐(일괄타결)에 넣자고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러시아 가스 도입 사업의 진행상황은.

"파이프라인을 이용한 PNG 방식과 배로 실어나르는 LNG(액화천연가스) 방식 등을 놓고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다. PNG가 더 경제적이지만 북한 통과문제가 걸려 아직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PNG를 도입해도 LNG 방식을 병행할 수 있다. "

▼북한이 가스파이프를 잠그면."천연가스의 북한 통과를 러시아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계약할 수 있다. PNG는 북한에도 이득이다. 통과료를 받을 수 있고 북한이 원하면 가스발전소를 지어줄 수도 있다. PNG의 북한 통과가 성사되면 남북한과 러시아가 철도와 전력망을 연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

▼러시아의 입장은.

"러시아는 PNG · 전력망 · 철도 연결을 (이 대통령의) 그랜드바겐에 넣자고 얘기한다.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은 북한이 핵문제에 전향적으로 나와야 그랜드바겐 내용도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캄차카 유전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

"광구 운영권이 (작년 7월) 국영 석유회사 로즈네프트에서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으로 넘어갔다. 과거 로즈네프트가 보유했던 운영권 범위와 가즈프롬에 새로 부여된 범위가 달라 한국석유공사가 참여 조건을 새로 협의하는 단계다. "

▼에너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은."러시아는 극동에서 에너지를 팔 시장이 필요하고 한국은 안정적인 공급원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경부 장관 시절인 작년 8월 '한 · 러 에너지 협력 액션플랜'을 마련했다. 전력 우라늄 가스 석유 등 에너지 분야에서 포괄적으로 협력하자는 협약이다. "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러시아는 자원부국이지만 인프라가 약하다. 한국이 철도 항구 등 인프라 구축에 협력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도 한 · 러 양국은 극동개발에 공동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통일되면 극동은 바로 한국의 인접지역이다. "

▼에너지 분야에 치우친다는 지적도 있다.

"무역 · 산업협력도 중요하다. 지난해 한 · 러 교역량이 100억달러 정도밖에 안 됐다. 한 · 중교역(1400억달러)에 비하면 너무 적다. 러시아의 정치 · 경제적 중요성에 비춰볼 때 교역 규모가 지금보다 4~5배는 커져야 한다. "

▼협력 확대 방안은.

"러시아는 원천기술이 강하고 한국은 상용화기술이 뛰어나다. 양국이 협력하면 분명 시너지가 클 것이다. 기초기술과 상용화기술을 결합하는 연구소를 한국과 러시아에 하나씩 세우면 좋을 것 같다. "

▼한국이 투자할만한 분야는.

"러시아는 제조업과 소비재 산업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전력망 현대화도 러시아가 원하는 분야다. 우리 기업들이 투자하면 한국과 러시아 모두 이익이 될 것이다. "

▼국내 기업의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러시아는 가능성 있는 시장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모스크바나 근처에 가 있는데 모두 공장을 확장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내년에 연산 15만대 규모의 페체르부르크 공장을 완공한다. 다른 나라에는 조립공장만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부품업체까지 다 들어온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이나 푸틴 총리가 참석하면 (투자 촉진에) 도움이 될 것이다. "

▼기업들이 느끼는 애로사항은.

"행정체계가 우리와 다르고 관세행정 절차가 우리 기준으로 좀 늦다는 지적이 많다. 러시아 스스로 바로잡아 가겠지만 대사로서도 기업들의 불편을 없애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

▼올해가 한 · 러수교 20주년이다.

"수교 초기엔 서로 상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측면이 있다. 이제는 서로를 좀 더 정확히 보면서 구체적으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구체적 내용을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러시아를 군사,안보,통일 측면에서 봤지만 이제는 시장,자원,기술 측면에서 봐야 하고 20주년 수교를 맞아 러시아와의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켜야 한다. 대통령이 러시아 대사에 처음으로 장관급 인사를 임명한 것은 그런 의미 아니겠나. "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대학 졸업논문으로 첫 인연
장관시절 3번 방문 환대 받아

이윤호 대사는 인터뷰 도중 러시아와의 인연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지식경제부 장관 시절(2008년 2월~2009년 9월) 러시아를 세 번 방문했다. 장관 시절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 중 하나"라고 운을 뗐다. 그때마다 러시아 에너지장관 등 관계부처 인사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대학 졸업논문 주제가 '한반도 주변 4강이 한반도 통일을 원하는가'였다고도 했다. 이 대사는 작년 11월 러시아 대사로 내정된 후 영어 원서 3권을 비롯해 러시아 역사책을 여러 권 읽었다.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는 "책을 읽고 나니 러시아가 굉장히 오랜 역사를 갖고 문화적 깊이가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며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패한 것도 러시아 때문이다. (러시아는) 험한 환경에서 강건하게 커온 대국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제가 경제학을 공부하고 경제기획원과 기업에서 기업 키우는 것을 연구한 사람"이라며 "이런 경험들이 러시아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