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주주 벗기면 투자 못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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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이익은 채권銀, 부실은 개인몫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풋백옵션의 덫에 걸려 풍비박산났다. 창업주의 2세들이 순차적으로 대표직을 맡으며 항공업까지 진출했으나 무리한 인수 · 합병 한 건으로 계열사마다 경영권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다.
부당한 관행 바로잡는 절차밟아야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위기에 빠뜨리고 또 다시 매물로 나선 대우건설의 비극은 외환위기 이후 IMF체제의 고금리를 견디다 못해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해외로 나갔던 김우중 회장은 병든 몸을 이끌고 자진 귀국해 재판을 받았고 실형과 함께 18조원이라는 막대한 추징금이 부과됐다. 일부에서는 김 회장이 외환위기의 주범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으나 선후를 정확히 가리자면 그는 외환위기가 초래한 고금리의 최대 피해자다. 당시 외환위기는 김영삼 정부의 외환관리 실패와 부도덕의 대표인 한보그룹과 무책임의 대표인 기아그룹 도산으로 인한 시중은행 신인도 하락이 초래한 사태이며 대우그룹은 외환위기 발생 이후에도 2년간이나 고금리를 버텼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올바른 수순에 따라 대우증권과 대우건설 같은 우량 계열사부터 매각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더라면 그룹해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여권 인사들이 거간으로 총출동해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 빅딜을 종용하다가 시간만 허비해 결국은 파국을 맞게 됐다. 김 회장에게 거액의 추징금이 부과된 것은 회계분식을 통한 사기대출 혐의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회계기준은 계속기업 가정을 적용해 중요한 시가하락이 없을 경우에는 취득원가로 자산을 계상하도록 정하고 있었다. 사기혐의가 적용된 금액중 동유럽 자회사의 투자자산과 외상채권은 특히 억울한 부분이다. 투자자산과 외상채권은 사업이 중단되면 회수가 불가능한데 이를 당초부터 가치가 없는 분식자산으로 보아 추징금을 산정하는 것은 회계이론상으로도 부당하다.
청산가치로 평가해 채권금융사가 인수한 대우증권 대우건설 대우해양조선 대우인터내셔널 등은 곧바로 경영이 정상화돼 황금주식으로 돌변했다. 대우건설은 2006년에 막대한 매각차익을 얻으며 금호아시아나에 매각됐고,대우증권은 산은지주회사의 핵심 자회사인 보물단지가 됐다. 대우해양조선과 대우인터내셔널도 수조원에 이르는 매각차익이 기대되고 있다. 상법상 유한책임인 대주주에게는 헐값 처분에 따른 손실을 추징금으로 부과해 씌우고 이를 헐값으로 인수한 채권금융사에는 막대한 매각차익을 떠안기는 요상한 사태가 발생된 것이다.
소수의 지분으로 경영권을 전횡한다고 비난하면서도 어쩌다 투자실패 사례만 발생하면 손실금액을 전부 물어내라고 몰아치는 일부 시민단체 주도의'대주주 벗기기'의 정당성은 다시 평가돼야 한다. 삼성그룹의 유일한 실패종목인 삼성자동차의 경우에도 자금을 출자한 삼성전자의 대주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건희 회장에게 사재출연을 강요했고 결국은 2조8000억원에 이르는 삼성생명 주식을 내놓고 말았다. LG증권 주식을 모두 넘겨주고 LG카드 유동성 위기의 책임을 부담한 LG그룹의 억울함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삼성생명과 LG카드 주식을 넘겨받은 채권은행은 원금회수는 물론 주가차익도 얻는 횡재를 얻게 됐다. 이익이 나면 모두들 나누고 손해가 나면 대주주가 개인재산을 동원해 변상해야 하는 상황에서 투자 활성화는 기대할 수 없다. 과거 10년의 정권에서 대주주에게 부당히 뒤집어씌운 추징금과 사재출연 강요 사태의 정당성은 철저히 재평가돼야 하며 부당성이 확인되면 이를 교정하는 절차를 속히 밟아야 한다. 성공투자는 나눠 갖고 투자실패의 책임은 대주주에게 모두 씌우는 부당한 관례가 개선돼야 기업의 '일자리 창출' 본능이 회복될 수 있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