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나…20년전 사둔 제주 땅 안팔리네"

토지거래 급감…가격도 3분의1로
'묻지마 투자' 외지인들 발동동
지난달 26일 제주도 서부 해안 일대 일주 도로.저 멀리 서쪽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동쪽으로는 흰 구름에 싸여 신비로움을 더하는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안 도로 주변에는 깔끔하게 새단장한 고급 주택부터 허름한 일반 농가까지 크고 작은 집들이 들어서 있다. 집 주변에는 비닐하우스가 설치된 논,밭,과수원 등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20년 전에 사놓은 땅을 지난해 내놨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네요. "서울에 사는 A씨는 제주시 외곽에 있는 토지 6000여㎡를 20년 전에 샀다. 건설업을 하는 친구로부터 소개를 받아 당시로서는 비싼 3.3㎡당 10만원을 주고 매입했다. 작년 초 사정이 생겨 3.3㎡당 15만원에 내놨지만 사겠다는 사람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제주도 토지시장은 2005~2006년 정점을 찍은 뒤 침체 일로를 겪고 있다. 경기가 한창 좋을 때는 기획부동산이 난립해 3만~7만㎥에 달하는 농지나 임야 등을 수백㎡ 단위로 쪼개 비싸게 팔아넘기는 식의 거래가 성행하기도 했다. 제주지역에서 리조트 사업 등을 했던 유일선 아이윌 대표는 "불과 3.3㎡당 10만원도 안 하는 땅을 현장에 한번 와보지도 않고 30만~40만원이란 비싼 값에 사들인 서울 사람들이 수두룩했다"며 "이들이 작년부터 집중적으로 매물을 내놨지만 도저히 구입 가격에도 되팔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토해양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 제주지역에서 거래된 토지는 2만9059필지로 2005년 4만2292필지의 69% 수준에 불과하다. 제주도 관계자는 이와 관련,"지난 1월 토지거래 건수가 3315필지로 전년 동기 대비 76% 늘었으나 최근 리조트나 아파트 등이 완공되면서 개인에게 등기 이전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외지인들이 관리지역의 농지나 임야 등을 사들인 사례는 극히 일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제주 지역 부동산 공인중개사들도 최근 들어 외지인들의 토지 매수 문의가 부쩍 늘었지만 실제 거래로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전한다.

제주시 연동에 사무실을 두고 영업 중인 김현옥 부국공인 대표(한경 베스트공인중개사)는 "아직까지는 지역주민들의 실수요에 따른 거래만 간간이 이뤄지고 있다"며 "오히려 이런 시기를 저렴한 가격에 제주 일대 토지나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로 봐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과거 고가의 리조트,펜션 등이 우후죽순 들어섰던 해안에는 최근 쓰나미 우려 등이 커지면서 대신 내륙 쪽 농가주택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며 "농가주택은 가격도 저렴해 대지면적 330㎡,건축면적 100㎡ 기준으로 1억~2억원 정도면 매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제주=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