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제약업계가 사는 길

정부가 최근 제약업계에 선물을 줬다. 연구개발비용에 대한 세액공제를 20%(중소기업은 30%) 해주고 3000억원 규모의 신약개발펀드를 조성해 주기로 한 것이다. 법인세로 50억원을 내야 할 대형 제약사가 연간 100억원을 연구개발에 썼다면 30억원만 내면 되는 셈이다. 혁신적 신약 개발 기술도 원천기술 분야 세제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내년부터 9년 동안 신약개발에 총 6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신약개발플랜까지 발표했다.

이처럼 세금부담이 줄게 되는 만큼 제약사마다 싱글벙글할 성 싶지만 표정은 정반대다. 당근을 쏟아낸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명분삼아 업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시장형실거래가상환제(저가구매 인센티브제)와 처방총액절감제를 시행키로 결정한 데 이어 앞으로 보험약가 합리화 방안을 단계적으로 실시할 방침이다. 조만간 특허만료 의약품과 제네릭(복제약)보험약가를 대폭 내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는 제약업계의 요구대로 리베이트를 받은 병의원도 처벌하기 위해 법 개정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혀 의사협회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다. 사실 제약업계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몰려 있다. 말이 쉽지 신약개발은 지난한 길이다. 2003년 국내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판매승인을 받은 LG생명과학의 신약 팩티브(항생제)는 지난 7년간 1200억원(기술수출료 포함)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3000억원이 투입된 만큼 돈으로만 치면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2008년 국산 신약으로 승인받은 일양약품 놀텍(항궤양제)은 후보물질 발굴에서 임상시험을 거쳐 판매허가를 받는 데 20년 걸렸다. 연구개발 비용은 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단기간에 100억원을 번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언제 달성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 해외에서 도입할 만한 신약도 별로 없다. 오리지널 신약을 모방해 만드는 제네릭의약품의 건강보험 약가는 갈수록 낮아질 것이 확실시된다. 어지간한 카피약으로는 수익을 올리는 데 보탬이 안 된다는 얘기다. 더구나 리베이트를 줬다가 걸리면 보험약가가 20% 깎이는 만큼 봉투를 돌릴 시대도 끝났다.

이러다보니 많은 제약사들이 건강기능식품이나 헬스케어 신제품 출시에 관심이 크다. 매출증대를 위한 당연한 수순이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핵심은 선진국 소비자들이 기꺼이 호주머니를 열고 살 만한 상품을 내놓은 데 있다. 제약업계도 마찬가지다. 대형회사일수록 보다 효율적인 신약 개발 전략을 다시 짜야 할 때다. 이를 위해 천문학적인 R&D비용을 대기 위한 규모의 경제 만들기가 절실하다. '그 밥에 그 나물'이란 평가를 받는 제약업계의 판도를 바꿀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이제 제약업계의 진검승부가 시작됐다. 살아남으려면 병의원 문턱이 닳도록 찾아가고 해외학회에 의사를 초청하는 영업력보다는 시대흐름의 변화를 파악,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내놓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 중 하나가 안티에이징이다. 한국경제신문이 3월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삼성동 COEX에서 '2010 안티에이징엑스포'를 개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승욱 과학벤처중기부장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