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로커', '아바타' 누르고 아카데미 6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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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회 오스카 시상식
남우 주연상 브리지스·여우 주연상 산다라 블록
전(前) 부부가 최고상을 놓고 격돌해 '장미의 전쟁'으로 비유된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전 부인 캐스린 비글로 감독(59)이 제임스 캐머런 감독에게 완승했다. 비글로 감독의 '허트 로커'와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는 나란히 9개 부문상 후보에 올랐지만 '허트 로커'가 주요 부문상을 싹쓸이했다.
8일(한국시간) 미국 LA 코닥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허트 로커'는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음향편집상 음향상 편집상 등 6관왕에 올랐다. '허트 로커'의 강력한 경쟁자로 사상 최대 흥행 기록을 수립한 '아바타'는 미술상 촬영상 시각효과상 등 3개 부문 상을 타는 데 그쳤다. 심사위원들이 3D 영화 혁명을 일으킨 캐머런보다는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고발한 비글로에게 가점을 준 결과다. 특히 비글로 감독은 아카데미영화제 82년 사상 여성 감독으로는 첫 감독상 수상자가 됐다. 비글로 감독이 수상자로 호명되는 순간,바로 곁에 앉아 있던 캐머런 감독은 '그래,그렇지'를 외치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자신의 두 번째 부인이던 비글로 감독에게 예우를 보낸 것이다. 비글로는 "뭐라 형용할 수가 없다"며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며 감격의 울음을 터뜨렸다.
두 감독의 작품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도 비견됐다. '아바타'가 4억달러를 투입한 대작이라면 '허트 로커'는 1100만달러를 들인 저예산 영화다. 비글로 감독은 2002년 액션블록버스터 'K19'의 흥행에 실패한 이후 투자자를 쉽게 찾지 못했다. 그녀가 B급 배우들을 출연시켜 이라크 전쟁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그녀의 재기를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캐머런 감독이 골든글로브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는 사이 비글로 감독은 영국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6관왕에 올랐다. 특히 1948년 첫 시상 이래 6차례를 제외하고 아카데미와 동일한 감독상 수상자를 배출해 온 감독조합상에서 감독상을 받아 수상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여우주연상은 '블라인드 사이드'에서 가족을 잃은 10대 흑인 소년을 입양해 미식 축구 스타로 키워낸 리 앤 역으로 열연한 샌드라 블록이 차지했다.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으로 불린 그녀가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블록은 이날 수상으로 전날 열린 래지상 시상식에서 '올 어바웃 스티브'로 최악의 여우주연상에 꼽혔던 불명예도 벗게 됐다.
남우주연상은 5전 6기 신화를 이룬 제프 브리지스에게 돌아갔다. '크레이지 하트'에서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퇴물 가수 배드 블레이크 역을 생애 최고의 연기로 선보인 것.그는 '라스트 픽쳐 쇼'(1972 · 조연) '선더볼트 앤 라이트풋'(1975 · 조연)'스타맨'(1984 · 주연),'컨텐더'(2000 · 조연) 등으로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은 처음이다. 브리지스는 앞서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LA비평가 협회상,미국 배우 조합상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남우조연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유격대의 활약상을 그린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에서 유대인을 학살하는 나치 장교 역을 해낸 크리스토프 왈츠가,여우조연상은 아버지에게 강간당해 자식을 낳은 딸을 구박하는 어머니 역을 연기한 '프레셔스'의 모니크가 각각 차지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