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강남 인사이드] (2) "분식집 16년만에 구룡마을 판자촌에서 대치동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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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일군 강남드림맹예순 사장(사진)이 강남에 온 것은 큰돈을 벌어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전세 35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살던 맹씨 가족 네 명은 전셋값을 계속 올려 달라는 주인의 성화에 못이겨 길거리로 나앉을 판이 됐다. 직장에 다니던 남편이 지병으로 회사를 쉬면서 수입이 끊긴 상황이었다. 그길로 전세금을 빼서 구룡마을에 26㎡짜리 단칸방을 얻었고 어느 곳이든 일거리가 있다고 하면 달려갔다.
대치 은마상가 분식집 맹예순사장
◆10만원 벌면 7만원 저축6년 동안 식당 일을 하며 보증금과 권리금 3800만원을 모은 맹씨는 은마아파트 상가 지하에 가게를 얻어 분식집을 열었다. 이때부터 아침 7시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며 하루 16시간씩 직접 떡볶이 떡을 뜯고 야채를 다듬는 생활을 시작했다. 맹씨는 "10만원을 벌면 7만원을 저축하고 나머지 3만원으로 근근이 먹고살았다"며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아이스크림 한번 사주지 않았고 연탄도 한 장 마음 편히 때우지 않으며 돈을 모았다"고 회상했다. 5년을 그렇게 일해 1억원을 모았고 1999년 전세 9000만원을 끼고 은행 융자 4000만원을 받아 102.48㎡ 은마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었다.
◆16년간 한결같은 거래
맹씨는 떡볶이 가게를 연 것부터 지금껏 장사를 별 탈 없이 하고 있는 것 모두가 주변 사람들이 그만큼 믿어줬고 그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야채를 공급하는 재료상이나 고춧가루를 대주는 사람은 16년째 같은 사람이다. 맹씨는 "야채상 아저씨가 처음 거래할 때는 25세 총각이었는데 이젠 41세 중년이 다 됐다"고 말했다. 고춧가루 역시 16년 동안 같은 사람과 거래하고 있지만 직접 본 것은 작년 말이 처음이었다. 맹씨는 돈을 더 모으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는 "2004년 구룡마을 단칸방에서 방이 3개나 되는 102.48㎡ 은마아파트로 이사를 하니 아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정도면 됐다'고 하더라"며 "아이들도 잘 컸고 내 집도 마련했기 때문에 대기업 사장이 부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맹씨는 "절약하며 사는 습관이 몸에 배서 돈이 부족하다고 아쉽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닥부터 시작해 곧 죽어도 후회 없을 정도로 항상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 때문에 더 바랄 것도 후회도 없다는 얘기다.
◆"자식들에게 고맙고 미안"
그래도 장사를 계속 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거래해온 사람들과의 신뢰와 단골손님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맹씨는 "우리 가게 손님의 70% 이상은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단골 손님"이라며 "습관처럼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 덕에 이렇게 먹고살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장사를 그만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8년째 1인분에 2000원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단골손님들을 생각해서라고 한다. 단골손님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를 묻자 그는 "손님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정성껏 대하다 보니 친정집에 오는 기분이라는 말씀들을 하신다"며 "엄마 손을 잡고 오던 딸들이 이제는 자기 딸들 손을 잡고 오는 것을 보면 장사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강남에서 분식집을 하는 것의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 맹씨는 "1995년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3일 동안 학교를 빠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엔 가게를 연 지 1년밖에 안 된 상황이라 호통만 쳐서 학교로 보내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2004년 은마아파트에 입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은 "당시 담임선생님이 구룡마을에 사는 아이들을 심하게 차별해서 그랬다"고 털어놨다. 맹씨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가난은 엄마의 잘못이지 너희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말해왔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내가 상처받을까봐 차별받는다는 티를 절대 내지 않았다"며 "자식들이 '우리보다 못 사는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말할 때면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