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개혁 대통령'의 뒷모습

지난 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외곽에 있는 아카디아대학 강당.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양복 윗도리를 벗어놓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연단에 섰다. 팔 소매는 걷어올렸다. 주민들에게 의료보험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조속한 입법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느라 열변을 토했다. 미 언론들은 달아오른 분위기를 지난 대선 유세장과 흡사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민들과 즐겨 소통하는 방식은 타운홀 미팅이다. 현장에서 정책 소비자들을 상대로 직접 설명하고,설득하길 좋아한다. 즉석에서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해준다. 간간이 농담도 곁들여 웃음보가 터지도록 한다. 이날 미팅은 의회에 의보개혁 법안을 처리할 최종시한을 던져준 뒤 다시 강하게 압박하려는 의도였다. 입법을 반대하는 세력에게는 맹공을 퍼부었다. 그의 눈빛은 번득였다. 일부 주에서 의료보험료가 두 배로 올라 고통받고 있는 사례를 들었다. 경쟁이 적은 환경에서 보험사들이 이익 챙기기에 바빠 가입자들은 안중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혁으로 제동을 걸지 않으면 계속 보험료를 올릴 것이라고도 했다. 그에게 보험사들은 1994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시도한 의보개혁을 좌초시킨 '악마'나 다름없어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야당인 공화당이 발목을 잡고 있는 행태도 비난했다. "초당적인 합의가 어렵다고 하는데 쉬운 일 하라고,근사한 직함에다 근사한 사무실을 누리라고 국민들이 의회에 보내준 게 아니다"면서 공화당 정치를 질타했다. "반대만 하고 있는 공화당은 정권을 잡은 지난 10년 동안 뭐를 했느냐"고 역설했다.

그는 올 들어 의보개혁 입법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지난 한 해 의회에 맡겨놨으나 지지부진했던 탓이다. 지난달 25일에는 여 · 야 지도부 38명을 백악관에 초청해 약 7시간에 걸쳐 끝장토론을 벌였지만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공화당과의 시각 차이만 재확인했다. 이날 타운홀 미팅에서 대국민 홍보전을 벌이는 가운데 행사장 밖에서는 반대파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이 끝나자 양복 윗도리를 한쪽 어깨에 아무렇게나 걸치고는 연단을 내려갔다. TV 카메라에 잡힌 그의 뒷모습은 쓸쓸해보였다.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에 정치생명을 건 지도자의 고단함이 묻어난 것일까.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