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집에 왜 갔나" 질문에 "라면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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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범' 김길태 검거
뻔뻔하게 살해 혐의 전면 부인…지켜본 시민들 욕설
경찰 "음식물 사라져" 신고에 잠복…추격 끝에 잡아
부산 여중생 이 모양(13) 성폭행 살해 피의자인 김길태는 포위망을 좁혀오던 경찰 기동대원과 부산 사상구 삼락동 현대골든빌라 옥상에서 마주쳤다. 장예태 순경 등 2명은 인상착의가 비슷하자 "길태다"라고 소리쳤다. 당황한 김길태는 건너편 빌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다닥다닥 붙은 빌라 사이 틈을 타고 내려간 김길태는 마스크를 쓰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걷기 시작했다.
김길태는 잠시 뒤 주차장 앞에 있던 부산경찰청 생활질서계 강의정 경사와 마주쳤다. 주변에 있던 또 다른 경찰이 "잡아라"라고 소리치자 김길태는 달아났다. 도주하는 김길태는 앞을 막아선 이용 경사의 얼굴을 강타했다. 이 순간 강 경사가 뒤에서 몸을 날려 덮쳤고 따라 오던 다른 사하경찰서 소속 수색대원 2명이 합류,검거했다. 검거 당시 주변에 있다가 목격한 한상길씨는"경찰과 주민들이 큰 소리를 쳐 보니까 김길태가 건물 사이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이 검거된 곳은 사건 현장인 덕포동 재개발지역에서 불과 200~300m 떨어진 곳이었다. 김의 양부모 집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다. 경찰은 "범인이 멀리 가지 않았다"는 프로파일러(범죄심리 분석가)의 분석과 "음식물이 자꾸 없어진다"는 시장상인들의 신고에 따라 그동안 이 일대를 샅샅이 뒤졌으나 잡지 못했다.
검거 직후인 오후 4시30분께 수사본부가 차려진 부산사상경찰서로 압송된 김길태는 마르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긴머리로 얼굴을 가린 그는 회색 후드티(모자가 달린 상의) 위에 검은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앞머리로 얼굴을 가려 몽타주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김의 압송을 지켜본 시민들은 김길태가 경찰서 입구로 들어서자 욕설을 퍼부었으며 일부 시민들은 "왜 그랬느냐"며 울먹였다. 김은 욕설을 퍼붓고 머리를 때린 시민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 노려보기도 했다.
김길태는 "여중생집에 왜 갔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라면을 끓여 먹기 위해 갔다"며 살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경찰은 숨진 이양의 몸에서 김의 DNA를 이미 확보한 상태다. 김영식 수사본부장은 "김길태를 상대로 범행 동기와 그동안 숨어있던 경위 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김은 지난달 24일 부산 사상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이모양(13)을 50여m 떨어진 빈집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뒤 살해하고 옥상 물탱크 안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양은 실종 당시 안경과 휴대폰을 집에 놔둔채 사라졌었다. 경찰은 실종신고 후 이양의 집을 조사하던 중 이양 집에 김씨의 족적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이웃 다세대 주택에서도 족적과 지문이 묻은 라면봉지를 발견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