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ㆍ중기 상생대담] 대ㆍ중기 한가족처럼 협력… '세계 최고' 동반 도약이 상생

정준양 대ㆍ중기협력재단 이사장
김명원 범우연합 회장
사회: 이치구 한경 中企 연구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대 · 중소기업협력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 2개월이 지났다. 올해부터 2대 이사장을 맡은 정 이사장은 두 달여 동안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관계를 현장에서 파악한 뒤 상생전략과 재단이 나아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정 이사장은 앞으로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협력은 '월드 퍼스트, 월드 베스트'(World First, World Best)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처럼 세계 최초,세계 최고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상생은 '생존'을 목표로 삼았지만 이제는 '최고'를 향해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최근 포스코 본사 27층 회의실에서 가진 '대 · 중소기업협력재단 이사장 취임 상생대담'에서 상생의 중요성을 이같이 밝혔다. 대 · 중소기업 상생문화 조성을 위해 열린 이날 대담에는 중소기업 대표로 김명원 범우연합 회장이 참석, 정 이사장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김 회장은 지난 34년간 포스코와 최우수 상생관계를 유지해온 협력업체 대표다. 이치구 한국경제 중소기업연구소장이 사회를 보았다. 대 · 중소기업협력재단은 대 · 중소기업 간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협력사업을 발굴하고 공정거래관계 조성을 목표로 2004년 12월 설립됐다. ▼사회=대 · 중소기업 간 납품거래 규모가 17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 · 중소기업협력재단 이사장을 맡자마자 상생협력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강조하셨죠.

▼정준양 대 · 중소기업협력재단 이사장=지금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관계는 작은 이익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는 대립적인 파트너십이었습니다. 이런 관계로는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이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패밀리 경영'을 해야 합니다. 패밀리 경영이란 작은 이익을 잘 나누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목표를 향해 함께 뛰는 것입니다. 상생협력의 목표는 '월드 퍼스트,월드 베스트'입니다.

▼사회='월드 퍼스트, 월드 베스트'가 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요. ▼정 이사장=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세계 최고가 되려면 신뢰와 소통이 이뤄져야 합니다. 서플라이체인에서 제품을 공급하고 받는 기업들은 한가족이 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포스코 회장에 취임하고 바로 방문한 곳이 제품과 자재를 공급해 주는 기업이었습니다. 협력업체를 찾아가 애로사항을 듣고 협력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앞으로도 시간이 나는 대로 협력업체를 방문할 것입니다. 지금도 당장 가야 할 기업이 많습니다. 대기업 CEO가 협력업체를 직접 찾아가 애로사항을 파악하면 신뢰와 소통은 금방 이뤄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범우연합도 방문했습니다. 범우연합 남양연구소의 기술 개발은 잘돼 가고 있습니까.

▼김명원 범우연합 회장=연구소를 직접 방문해 주셔서 협력업체로서 사기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덕분에 세계 최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개발(R&D)투자를 늘렸습니다. 포스코 냉연공장에 필요한 첨단 압연유 개발은 끝마쳤고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신뢰하면서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면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포스코는 어떤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나요.

▼정 이사장=반도체 분야의 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범우연합과 같은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중소기업들이 넘버원이 돼야 대기업도 넘버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야 상생협력이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지요. ▼사회=평소 김 회장께서도 신뢰와 소통을 강조하셨는데.

▼김 회장=신뢰는 갈등이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갈등을 없애는 방법으로 명령과 타협 두 가지가 있어요. 명령은 상하 수직관계라 좋은 방법이 아니고 협상이라는 것은 적당히 하자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하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하면 기업의 거래관계에서 갈등이 없어집니다.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패밀리 경영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고 적극 참여했으면 합니다.

▼사회=현재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가운데 대기업과 직접 거래하는 기업은 전체의 3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70%의 납품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인 듯 싶습니다. ▼정 이사장=올해부터 재단은 2차 벤더(협력업체)와 3차 벤더에 해당하는 기업을 위한 사업을 전개할 방침입니다. 특히 도금 도장 열처리 주조 등 '뿌리 기업'에 속하는 2,3차 벤더들을 위한 근본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입니다. 이들의 기술 수준이 미흡하면 결국 완제품이 고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제는 지금까지 점검하지 않던 뿌리 기업들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게 기술 수준을 끌어올려야 할 시점입니다.

▼김 회장=뿌리 기업들을 강소(强小)기업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현재 대기업이 실시하는 구매조건부 신개발사업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구매 약속을 받은 뒤 신제품을 개발해내는 제도인데 지난해 450억원어치를 판매하는 효과를 거뒀습니다.

▼정 이사장=올해는 포스코 삼성전자 등 170개 대기업이 구매조건부신개발사업에 참여해 600억원어치의 제품을 구매할 계획입니다. 포스코는 중소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할 경우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수요연계R&D펀드 100억원을 조성했습니다. 올해도 대기업 세 곳이 참여해 700억원 규모의 수요연계R&D펀드를 만듭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뿌리 기업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상생협력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성공모델을 개발할 필요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정 이사장=포스코의 경우 중소기업과 공동으로 개선활동을 수행하고 그 성과를 공유하는 '성과공유(Benefit Sharing)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중소기업이 자율적인 개선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품질을 개선할 경우 다양하게 보상해주는 제도입니다. 장기적으로 대기업의 원가절감에도 크게 기여합니다. 포스코는 재무성과에 대해 3년간 절감금액의 최대 50%를 매년 보상하고 장기 계약권,물량 확대, 공동특허 등의 혜택도 줍니다. '이익분배 프로그램'이야말로 기업 간 거래에서 상생문화를 자발적으로 형성하게 만듭니다.

물론 아직까지 모든 대기업이 이익배분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기업이 협력업체로부터 납품받은 뒤 대금을 즉시 결제해주지 않는 업체도 더러 있고요.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재단에서는 올해 84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성과공유제를 도입하도록 유도할 방침입니다. 특히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SK 포스코 등 상생협력 우수기업 전문가들로 구성된 워킹그룹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를 열어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만들고 상생협력 우수사례를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우수사례를 공유하고 소통할 시스템도 갖춰야 하겠습니다.

▼김 회장=현재 대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에는 대부분 웹(Web) 기반의 온라인 시스템이 개설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주로 '전자세금계산서'를 주고받거나 '자재 바코드 시스템'을 운영하는 등 업무의 신속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제 이 시스템을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장(場)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상생문화를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단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동체 커뮤니티인 '패밀리 커뮤니티(Family Community)' 설치를 적극 지원해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회=포스코의 위기극복 전략을 대 · 중소기업협력사업에도 적용하는 게 가능한지요.

▼정 이사장=사실 포스코 회장에 취임한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가장 어려운 때였습니다. 200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세계 철강업계의 불황 여파로 이듬해 2월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23%를 감산해야만 했습니다.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경험했고,포스코를 잘 이끌어준 선배들한테 불명예를 주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직원의 사기를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나는 7대 회장이다. 7이라는 숫자는 럭키 세븐"이라고 강조했어요. 저는 '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라고 표명하고 직원들에게 "서로 믿고 같이 한번 해보자"며 그들의 사기를 북돋웠습니다. 이런 사기앙양을 통해 고객만족이나 서비스를 강화하자 서서히 실적이 올라가면서 외국계 철강회사와 나란히 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지금은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위기 때 비축된 체력으로 제2의 도약을 해야 합니다. 올해부터 여러 가지 도약의 기회가 올 것으로 예측되는데 그동안 쌓은 체력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줄 것으로 봅니다. 도약에는 스피드가 중요합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스피드를 올리면 도약은 두세 배까지 높아지고요. 포스코와 범우연합처럼 서플라이체인을 통해 패밀리경영을 하면 신뢰를 높일 수 있습니다. ▼김 회장=패밀리경영에 동참해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기위해 땀을 흘리겠습니다.

정리=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