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막걸리 후유증

지난 3일 서울 강북센터 개소식에 참석했다. 한국식으로 진행된 고사에는 미소 짓는 돼지머리가 올라와 있었다. 순서에 따라 절도 하고,음복도 하니 막걸리 한잔에도 은근히 취기가 오른다.

생각해보니 AXA가 한국에 진출한 지 벌써 4년째다. 처음 한국에 오기 전에는 일본에서 20여년간 생활한지라 동양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일본인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오히려 프랑스인들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하는 점,의사표현이 적극적인 점,술과 노래를 좋아하는 낭만적 삶 등.필자는 특히 한국에 와서 소주와 족발에 매료됐다. 소주는 어디서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직원들과의 거리감을 덜어주는 촉매제다. 그래서 소주는 한국 문화를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소재다. 족발 또한 내가 먹어 본 세계의 음식 가운데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다.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시도 때도 없이 내 식욕을 자극하곤 한다.

이날 행사에는 소주 대신 막걸리가 올라왔는데,한국 사람들도 프랑스 사람들처럼 술과 가깝게 생활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다 보니 음주운전 사고가 좀처럼 줄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는 1970년대 프랑스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만6000명에 이르렀다. 그 이후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보행자우선의 교통정책 등 강력한 정부정책에 힘입어 최근 사망자 수가 5000명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2012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3000명 이하로 낮추기 위해 음주단속을 강화하고,재범자는 차량을 압수하는 등 강력한 법령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한국도 음주운전사고가 많다. 최근 우리 회사의 통계를 보면 사망사고 중 음주운전 비중이 4분의 1 내지 3분의 1쯤 되는 것 같다. 이는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사고 유형이다. 얼마 전 모 방송국 기자가 "요즘 손해율이 높아져서 고민이 많다던데"라고 질문하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마음 아픈 것은 손해율 증가가 아니라 교통사고 증가로 인한 인명피해다. "한국의 음주운전 단속기준(혈중 알코올 농도 0.05%)은 너무 관대해 보인다. 유럽(0.02%)이나 일본(0.03%)의 2배에 가깝다.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도 보험회사가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도덕 불감증도 문제다. 음주운전자를 생계형사범으로 인정해 가볍게 처리하는 것이나,교통사고 범법자를 너무 쉽게 특별사면하는 것은 인정이 넘쳐서일까 피해자 인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서일까.

막걸리 한잔에도 삶의 여유를 말하지 못하고 보험회사 CEO란 직업적 한계를 드러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나와 타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법령을 강화하는 것이 좋은 문화와 관습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길이 아닐까.

기 마르시아 AXA손해보험 사장 guy.marcillat@ax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