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대란' 우려한 긴급처방 …재개발ㆍ재건축사업 탄력 기대

●570개 '백지동의서' 단지 구제
국토해양부가 요건에 미달한 '백지 동의서'를 받아 설립된 조합이라도 하자를 치유하면 설립변경 인가를 내주기로 결정함에 따라 재개발 · 재건축 설립무효 소송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현재 소송 중인 조합도 적법한 동의서로 변경인가를 받으면 법원 상급심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백지 동의서란 재건축 ·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명시돼 있는 철거비 · 신축비 · 기타 사업비용 등을 적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들로부터 받은 조합설립인가 동의서를 말한다. ◆하자 치유 지침 왜 나왔나

국토해양부는 지난 1월 말 대법원이 백지 동의서를 이유로 부산 해운대구 우동6구역 재개발 조합에 대해 설립 무효 확정판결을 내린 직후 전국 570여곳 재개발 · 재건축 단지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여왔다. 그 결과 법원에 계류된 백지 동의서 관련 소송이 102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토부는 조합원 동의서 내용을 바꿔 제출한 조합설립 변경인가 신청에 대해 지자체들이 대부분 인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자체들이 조합원 동의서를 바꾸는 것은 재개발 · 재건축의 '중요사항 변경'이 아니라고 보고 승인을 내주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됐다"며 "동의서 내용 변경도 조합원수나 공사비 변경,건축물 연면적 변경처럼 중요 사항으로 간주해 인가 대상에 포함시키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재개발 · 재건축 조합 어떻게

도정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재개발 · 재건축 조합설립 동의서를 받을 때는 △주택(상가) 소유자 인적사항 △토지 · 건축물 면적 △대지면적 · 연면적 등 신축건물 개요 △철거 · 신축비용 개산액(개략적 산출 금액) △비용 분담사항 △동 · 호수 추첨 및 수익 · 비용 처리 △조합장 선정 동의 등을 명시한 동의서를 주민들로부터 받아야 한다. 비용 분담사항의 경우 종전에는 정비조합(추진위) 운영규정(고시)에 '서술형'으로 돼 있었지만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2008년 12월 조합원별 분담금 추산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으로 시행규칙이 바뀌었다.

규칙에 따르면 조합원 분담금(추산액)은 분양예정 대지 · 건물 추산액에서 조합원별 종전 토지 · 건축가격에 비례율(사업준공 후 대지 · 건물 총 가격에서 총 사업비를 뺀 금액을 종전 토지 · 건물 총 가격으로 나눈 비율)을 곱한 금액을 뺀 가격이다.

이번 국토부 지침 시행으로 동의서에 이런 내용을 빠뜨린 재개발 · 재건축 조합은 요건에 맞춰 조합원 동의서를 다시 받아 조합설립 변경인가 신청을 내면 인가를 받을 수 있다. 조합설립 변경인가를 받으려면 조합설립 인가 때처럼 토지 등 소유자 4분의 3 이상,토지면적 2분의 1 이상 토지소유자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자 치유는 정부 권한

국토부의 하자 치유 방침은 법적으로 절차상 문제는 없다. 하자 치유 결정은 대법원 판결과 별개로 주무부처 권한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합원들이 하자 치유를 통해 면죄부를 받은 조합을 문제삼아 다시 소송을 낸다면 사법부가 적법성에 대한 판단에 나설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 김우현 공보판사는 "삼권분립에 따라 법원은 행정청의 하자치유 자체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는다"며 "소송이 제기된다면 그 때 가서 사법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가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맞게 하자를 치유했다면 법원은 이를 적법하다고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대법원은 1998년 주된 납세의무자에 대한 과세처분이 미흡한 상태에서 2차 납세의무자에게 납부 고지를 한 해운대세무서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결했으나 이후 주된 납세의무자에게 다시 과세하도록 하자를 치유하자 이를 인정했다.

강황식/서보미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