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 화순 탄광촌을 '백신허브' 로 바꿨다

● 작년 1월 공장 가동후, 약재 유통시설 등 속속 입주

지난 14일 전남 화순군 화순읍 내평리 화순지방산단 내 녹십자 백신공장.200여명의 직원들이 휴일도 잊은 채 자동화된 생산공정에서 바쁘게 손길을 움직이고 있었다. 청정 유정란(자연란)에서 배양된 바이러스는 자동 채독(菜毒)설비에서 추출된 뒤 초고속 원심분리기를 통해 수분과 불순물 등이 제거됐다. 이어 약독화(弱毒化:병원성을 떨어뜨림)와 희석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백신원액은 쉴 새 없이 유리병과 주사기에 채워졌다.

화순공장에서 생산되는 백신은 모두 6종.신종플루를 비롯해 일본뇌염,수두,파상풍,유행성 출혈열 그리고 독감 백신 등이다. 백신 수요 급증으로 녹십자는 올해 화순공장의 백신 매출 목표를 작년 1800억원보다 약 11% 늘어난 2000억원으로 잡았다. 또 개발이 진행 중인 유전자 재조합 방식의 탄저 백신을 비롯해 BCG(홍역),AI(조류인플루엔자),TP(파상풍 · 디프테리아),DTaP(파상풍 · 디프테리아 · 백일해) 백신 등도 순차적으로 이곳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정진동 생산지원팀장은 "화순백신공장은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온 독감 백신을 자급자족하고 우리나라가 세계 12번째 독감 백신 수출국가로 도약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며 "작년 1월부터 공장을 가동했지만 백신 공급이 달리다보니 올해도 전 직원들이 밤낮 없이 생산에 전념하는 비상근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녹십자 백신공장이 호남 유일의 '탄광촌'인 화순군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 백신공장의 활황 덕분에 지역경제가 살아나면서 화순군은 이 공장과 연계한 '백신산업특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계획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녹십자 백신공장 중심의 '바이오 클러스터'와 화순 전남대병원을 매개로 한 '메디컬 클러스터' 구축이다.

그동안 화순 경제를 지탱해온 것은 근교농업과 1931년부터 채굴을 시작한 화순탄광이었다. 특히 화순탄광은 한때 직원 2000여명을 거느린 대형 사업장이었다. 하지만 1989년을 기점으로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에 따라 내리막길을 걸으며 사람과 돈이 넘치던 탄광촌은 졸지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유병규 화순군 군정발전기획단장은 "폐광촌에 지원되는 보조금도 2016년이면 중단되고 농업 하나만 가지고는 미래가 어두웠다"며 "그래서 찾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청정 자연환경과 풍부한 농산물 생산지라는 장점을 활용한 생명의학산업이자 이를 클러스터화하는 백신산업특구"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략은 녹십자 백신공장을 유치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녹십자가 화순을 공장 입지로 정한 것은 바이러스 생산에 필요한 청정 유정란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데다 의약품 생산에 적합한 화순의 깨끗한 자연환경도 이유로 작용했다.

'백신허브'라는 화순의 꿈은 곳곳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바이오 클러스터에 들어설 프라운호퍼 IME연구소의 경우 그동안 일곱 차례 방한한 라이너 피셔 소장이 올 상반기 중 화순을 찾아 연구소 설립을 최종 조율할 계획이다. 지난해 착공해 현재 7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는 약재 유통시설은 올 상반기 준공된다. 메디컬 클러스터지구도 전남대 의대 간호대가 광주에서 순차적으로 이곳으로 옮겨 올 계획이어서 순조로운 진행을 보이고 있다.

화순군은 오는 6월 백신특구 지정을 신청할 예정이다. 특구로 지정되면 생산 유발효과 2521억원,부가가치 파급효과 939억원 등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346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작년 6만9000명으로 감소했던 인구도 2015년 8만9000명,2020년 11만1000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했다.

화순=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