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56년생' 국·실장 13명 평직원 자리로

정년 4년 남으면 보직 해임
사실상 54세 정년 '관행' 철폐

조사역으로 일선부서에 배치
"인사 적체 심화" 하위직은 불만
금융감독원이 국 · 실장급 간부가 만 54세가 되면 무조건 현업에서 빼던 관행을 폐지한 것은 고령자차별금지법 개정의 영향이 크다. 매년 들끓는 '낙하산 인사' 논란을 조금이나마 줄이려는 의도도 들어 있다. 금감원의 이 같은 변화는 시중은행 등 민간 금융회사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낙하산 줄어들까금감원은 15일 국 · 실장 인사를 단행했다. 특징은 올해 만 54세가 된 간부 17명 중 서문용채 기획조정국장과 김건섭 금융투자서비스국장,박동순 거시감독국장,오수상 런던사무소장 등 4명을 유임시킨 것이다.

나머지 13명도 보직해임 후 현업 부서에 배치키로 했다. 그동안 금감원은 만 54세가 되면 예외 없이 보직해임해 연수원 교수실로 발령을 냈다. 이곳은 피감기관인 민간 금융회사의 감사직으로 가기 위한 '대기 순번'을 받기 위한 곳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현업에 배치된 사람들은 부서적응 연수를 거쳐 연구위원으로 일하거나 소비자 보호,검사 지원 등을 맡게 된다. 직급은 국장이지만 직위는 평직원인 조사역이 된다. 금감원은 10여명의 기존 교수실 인력도 현업 부서에 배치하고 교수실을 폐지하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고령자차별금지법 개정으로 나이를 기준으로 한 인사는 불법이 된 데다 정년보다 빨리 보직해임된 간부들이 '낙하산 논란'을 일으키고 있어 이를 해소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실제 '뒷방'격인 교수실로 물러난 간부들은 대부분 감사 자리를 꿰찼다. 사실상 정년(58세)보다 4년 정도 일찍 나가는 대신 연봉이 많은 감사로 옮겨갈 수 있도록 유도해 온 것이다.

금감원은 제재심의실장에 김진수 기업금융2실장,보험조사실장에 김수일 인력개발실 교수 등을 전보 발령했다. 대구지원장에는 김동건 감사실 부국장을 승진시키는 등 국장 9명,실장 5명을 승진시켰다. 이 같은 승진 규모는 지난해의 절반(48%)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제 '낙하산'이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반 조사역이 된 금감원 간부들은 감사를 선호할 것이고 올해 보직을 유지한 사람도 내년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감사직에 대한 요구는 여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위직 직원들은 불만을 나타냈다. 금감원의 한 직원은 "승진이 4년가량 정체돼 간부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도 나이 기준 인사제도 바꿔금감원과 비슷하게 연령을 기준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해 온 은행들은 최근 성과를 반영해 인사제도를 바꾸고 있는 추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만 55세가 된 지점장들의 옷을 일괄적으로 벗겼지만 최근 일부 은행들은 지점장 업무를 계속 맡기고 있다.

우리은행은 2005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만 55세 명퇴 관행을 없앴다. 지난해 100여명의 만 55세 간부 중 5명,올해는 130여명 중 14명이 계속 지점장으로 일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아 후선에서 일하고 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도 임금피크제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신한은행은 임금피크제 대신 성과 평가 등을 거쳐 만 55세를 맞은 간부 중 일부를 구제하고 있다. 황록 우리은행 부행장은 "은행 등 금융회사에도 성과를 중심으로 한 인사시스템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