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시대의 비명] 아파트 줄여 2억원 맡겼는데…한달 이자 91만원→56만원

아파트 관리비 등 생계비 연금 합쳐야 겨우 막아
단 1%라도 더 받자 '금리쇼핑'…불안하지만 저축은행 '노크'
"우리 같은 사람은 죽으라는 얘기냐."

며칠 전 한 시중은행 용인 지점장은 봉변을 당했다. 말리는 직원을 밀치며 지점장실에 들이닥친 예금고객 최모씨(62)는 고함부터 질렀다. "2억원을 은행에 맡기고 한 달에 받는 이자가 53만원밖에 안 되면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는 게 최씨의 얘기였다. 최씨는 4년 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했다. 2년 전 55평형(183㎡)짜리 집을 팔아 막내아들 결혼자금에 보태고 33평형(110㎡) 아파트로 이사왔다. 지난해까지는 빠듯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연 6.5% 금리를 적용받아 세금 내고 한 달에 91만원을 이자로 받았다. 연금 15만원을 합쳐 친구들과 만나 가끔 외식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사정이 돌변했다. 만기를 연장하려고 찾아왔는데 창구 직원은 연 3.8%의 금리밖에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세금을 제하면 53만원이다. 최씨는 끝내 울먹였다. 지점장은 하는 수 없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금리(지점장 전결금리)를 더 얹어 연4.0%에 맞춰줬다. 그래봐야 고작 한 달에 3만원의 이자가 더 붙는다. 연금을 합쳐도 아파트 관리비에다 전화 가스 수도 부식비 등 생계비를 댈 수가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예금생활자들의 고통이 심해지고 있다. 쓰러져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한국은행이 정책금리(기준금리)를 2008년 10월 연 5.25%에서 지난해 2월 연 2.0%로 내린 이후 지금까지 이 금리가 유지되고 있다. 한은이 정책금리를 낮게 유지하다 보니 은행들도 예금금리를 많이 줄 수 없다. 그나마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초까지는 예금확대 경쟁이 붙어 연 4%대 후반까지 이자가 주어졌다. 하지만 이달 들어선 이 정도의 금리는 꿈꾸기 힘들다. 앞으로 경제가 불확실하고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은행 예금으로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올 들어 두 달간 은행 예금으로 몰린 돈이 38조원에 이른다. 은행으로선 예금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 목동에 살고 있는 박모씨(67).금융자산이 5억원 있어 최씨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젊없을 때 더 많은 재산을 모아놓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다. 은행에 5억원의 예금을 맡겨둬도 세금을 제하고 나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이 150만원이 채 안 된다. 부부 합쳐 30만원가량 들어가는 주중 골프는 이제 포기했다.

금융자산이 많은 기업들도 저금리에 울상짓긴 마찬가지다. 2004년부터 경기호황으로 계속해서 짭짤한 수익을 올린 경기도 안산의 한 기계공구업체.200억원의 여유자금을 3년짜리 국고채에 투자해 적잖은 이자수익을 올려왔지만 이제 다른 투자수단을 알아보고 있다. 2008년 7월까지만 하더라도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6.1%를 웃돌기도 했지만 이제 연 4%에도 미치지 못한다. 연간 이자수입이 1년8개월 새 10억원에서 6억50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가 1년 이상 지속되자 시중은행 이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금리 쇼핑'에 나서는 새로운 풍속도까지 생겼다. 저축은행들이 몰려있는 강남역,테헤란로 등을 돌며 1%포인트라도 이자를 더 주는 곳에 예금을 맡기는 것이다.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들은 예금자보호한도(5000만원)보다 조금 모자란 4000만~4500만원씩을 여러 저축은행에 분산 예치하기도 한다. 한국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들은 2008년 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연 8%대 이자를 줬지만 지금은 금리가 연 5%대 초중반으로 낮아졌다"며 "하지만 시중은행에 비해서는 여전히 1~1.5%포인트 정도 이자가 높기 때문에 금리에 민감한 고객들이 꾸준히 저축은행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후순위채에 돈이 몰리는 것도 저금리 시대에 나타난 독특한 현상이다. 솔로몬저축은행은 지난해 9월 3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청약을 접수했는데 1122억원이 쏟아져 들어왔다. 저축은행 후순위채 청약에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몰리기는 처음이었다. 저축은행 업계는 올해에도 후순위채 발행이 흥행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특별판매 예금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국민은행은 연 4.9%의 특판예금 가입을 1월 말부터 3월 초까지 받을 예정이었으나 3주 만에 8조3000억원이 모집되자 2월8일까지만 접수했다. 1조원 가입을 목표로 했던 신한은행의 특판예금도 4일 만에 목표치를 달성했다.

서울 강남 등지에선 사모펀드를 만들어 주가연계증권(ELS),해외상장지수펀드(ETF),원자재 등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직 일부이긴 하지만 해외 헤지펀드에 목돈을 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일부에선 하반기나 내년 초께 갈 곳이 없는 자금이 증시나 부동산시장으로 재차 몰려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저금리로 시중자금이 넘쳐나면 일정 시차를 두고 증권시장이나 자산시장에 버블이 끼는 경우가 많았다"며 "자금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유승호/이태훈/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