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전세' 등기 안떼고 계약땐 전세금 떼일수도

근저당+전세금, 매매가 60% 이하로
신탁회사 위탁땐 신탁사와 직접 계약
준공은 됐지만 분양이 덜 된 대구 달서구 A아파트 105㎡에서 1년6개월가량 전세로 살고 있는 회사원 김모씨(35)는 전세보증금 6000만원을 통째로 날릴 위기에 처했다. 최근 시공사 협력업체인 K사로부터 다음 달 말까지 아파트를 비워주지 않으면 강제 퇴거시키겠다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인근 시세보다 싼 값에 나온 미분양 전세 아파트를 권리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시행사와 덜컥 계약을 맺은 게 화근이었다. 이 아파트는 모 신탁회사에 신탁된 상태에서 지어졌다. 신탁회사는 아파트 준공 후에도 미분양이 지속되자 김씨 전세 아파트 등 10여채를 K사에 대물변제 방식으로 넘겼고 소유권을 넘겨받은 K사는 김씨에게 집에서 나가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미분양 전세 아파트에 주의보가 내렸다. 16일 국토해양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현재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지방 중심으로 4만8469채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건설업계는 이 중 미분양 장기화로 시행사나 신탁회사가 임대로 돌린 아파트는 절반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동아건설 SK건설 등 일부 중대형 업체들은 미분양 전담관리 회사를 따로 세워 임대 등에 나설 정도다.

자금력이 약한 중소 건설업체와 시행사가 안고 있는 미분양 아파트의 경우 전세 계약과정에서 세입자 피해사례가 적지않게 생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연구실장은 "최근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부동산 정보업체 홈페이지에 미분양 아파트 전세계약 피해 및 궁금증을 묻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김씨 같은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미분양 아파트 전세계약 때 준공된 아파트의 토지 · 건물 등기부등본을 떼어보고 저당권 설정 여부 등 권리관계를 꼭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처분 가압류 등이 적혀 있으면 계약을 바로 중단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근저당이 설정됐음에도 전셋값이 저렴해 전세를 꼭 얻고 싶다면 근저당 금액과 자신의 전세보증금 합계가 아파트 매매가격의 60%를 밑돌아야 안전하다. 건설사나 시행사가 은행 대출금 등을 갚지 못해 아파트가 경매나 공매로에 넘어가게 되면 낙찰가격이 시세의 70%대까지 낮아질 수 있어서다.

신탁회사가 사업을 위탁받은 아파트도 요주의 대상이다. 중소형 시행사가 아파트 분양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신탁회사에 개발 및 관리 담보 신탁 등을 맡기는 게 보통이다. 이때 시행사가 자금 부족으로 신탁관계를 해지하지 못하면 시행사가 임의로 놓은 전세 아파트에 대해 은행 협력업체 등 채권자가 경매 · 공매에 부칠 수 있다.

함 실장은 "신탁계약이 맺어진 아파트라면 신탁회사나 채권자들의 서면동의서를 첨부해서 시행사와 임대차 계약을 맺거나,채권자들의 서면동의 아래 신탁회사와 직접 전세 계약을 맺는 게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했다. 미분양아파트는 시행사,신탁사,채권단,협력업체 등 권리주체가 복잡한 만큼 전세 계약 시 미리 법률자문을 받을 필요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