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안된 '그린코리아' 기업들만 골병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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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무부처 이원화…중복규제10대그룹 계열 석유화학회사의 환경담당 임원 A씨는 요즘 죽을 맛이다. 저탄소녹색성장 기본법이 내달 14일 시행됨에 따라 향후 5년간의 에너지 절약 및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스케줄을 작성해 9월 말까지 정부에 내야 하는데,주무부처조차 정해지지 않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무부처를 지식경제부와 환경부 두 곳으로 애매하게 정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그는 "내년에 설비를 얼마나 가동할지,생산목표를 얼마로 잡을지 윤곽조차 잡지 못해 온실가스 감축목표 제출시한을 늦춰주면 좋겠는데,누구와 상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정부가 향후 60년의 새로운 국가발전 전략으로 제시한 녹색성장법시행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연간 2만5000t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600여개 대형 사업장은 온실가스 의무감축 대상으로 지정돼 정부의 집중관리를 받게 된다. 이들 사업장은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6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기업들이다.
하지만 부처 갈등으로 주무부처조차 한곳으로 정해지지 못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 당초 시행령 초안에서 주무부처를 하나로 둘 계획이었으나 지경부와 환경부의 주도권 다툼으로 '공동관리'라는 어정쩡한 타협이 이뤄졌다. 정부는 지난 12일에도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고 단일화 방안을 논의했지만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재계는 물론 정부 내에서조차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적 발상"이란 비판이 나올 정도다. 지경부와 환경부 역시 주무부처 단일화에는 동의하고 있으나 누가 맡을지에 대해선 서로 "우리가 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환경부는 "온실가스 배출 규제는 환경부가 맡는 게 세계적 추세"라는 입장인 반면 지경부는 "기업 현실을 잘 아는 부처가 맡아야 규제와 인센티브를 병행할 수 있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규제 대상이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로 이원화된 것도 이중규제 성격이 짙다. 에너지를 소비한 결과로 나오는 것이 온실가스인데,이를 각각 규제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지적이다.
규제 속도가 빠른 것도 문제다. 한 기업 관계자는 "녹색성장이 정부의 역점 사업이다 보니 공무원들이 경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주용석/이정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