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강남 인사이드] (9) 강남 끝자락엔…전교생 3분의 1이 무상급식 받는 학교도

● 빛과 그늘
月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 늘어…"강남권 통합위해선 사회안전망 시급"
한쪽선 VVIP 마케팅·안테나숍 천지…해외 희귀 브랜드 비싸도 매출은 쑥
서울 강남구나 서초구에는 점심을 굶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학생이나 장애인 등 특수교육대상자는 제도적으로 무료급식 혜택을 받는다. 지역 · 직장 건강보험료가 월 2만9000원 이하인 가정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저소득층 가정이 많은 특수지역이나 교육복지 투자사업이 필요한 학교는 교사가 추천하면 100% 무상급식이 가능하다.

◆의외로 많은 무상급식하지만 이런 제도적 인프라를 모두 걷어내고 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강남구 초등학교의 무상급식 대상자는 975명,서초구는 452명에 달했다. 중학생의 경우는 강남구 849명,서초구 480명이었다.

S중학교의 경우 전교생 520명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178명이 무료급식을 받고 있다. 이 학교의 2학년생 강현우군(가명 · 14)은 늘 등교를 서두른다. 얼른 학교에 가야 용변을 보고 세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집은 강남의 대표적 판자촌인 구룡마을에 있다. 집안에 화장실이 없어 임시로 만든 재래식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제대로 이용하기가 힘들다. 강군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매월 6만원씩 내는 급식비를 교육청에서 지원받고 있다.

무상급식 대상 학생들은 영구임대 아파트에도 많이 살고 있다. 강남 · 서초지역의 영구임대 아파트는 서울 전체의 16.8%에 해당하는 7664세대.한번 입주하면 사망할 때까지 살 수 있고 월 임대료도 36㎡(약 11평)형 방 두 칸짜리가 3만원 정도로 싸다. 임대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인,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등이다. 간질을 앓고 있는 최홍렬씨(70)는 95세 노모를 모시고 2002년부터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입주 당시엔 아내도 있었지만 2005년 세상을 떴다. 이혼한 둘째 딸이 정신지체 아동인 손녀를 떠넘기듯 맡기고 가 2년 넘게 돌보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거동이 불편해 손녀는 전라도 복지시설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자식은 아들 하나,딸 셋이 있지만 모두 생활이 어려워 명절 때도 얼굴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최씨는 "그래도 자식들이 그리워 자주 사진을 꺼내 보곤 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자진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이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3학년인 자녀 둘을 홀몸으로 키우고 있는 김경미씨(가명 · 37)는 대청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기초수급대상자 자격을 얻었다. 일주일에 4일을 하루 9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받는 돈은 70만원이 채 안 된다. 김씨는 "식당 일을 하면 한 달에 13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지만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없어 복지관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가 번 돈은 일원동 단칸방 월세 35만원과 공과금,보험료 등을 내고 나면 거의 남는 게 없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월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강남권 통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라며 "이들의 심리적 박탈감을 다독여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 정책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초고가 마케팅의 세계

하지만 장면을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의 쇼핑가로 돌려보면 완전히 별천지 같은 세상이 나타난다. 이탈리아 명품 수트로 유명한 '브리오니'의 수석 재단사 안젤로 페트루치씨는 최근 은밀히 한국을 방문했다. 수트,코트부터 넥타이,양말에 이르기까지 한 시즌 70벌을 주문한 단 한 명의 고객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재단사는 그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1억원 상당의 최고급 원단을 최초로 공개했다. 또 A백화점은 가끔 가다 정기휴일이면 상위 1%에 해당하는 VVIP 고객에게만 특별 초대권을 발송해 비공개로 뒷문을 열어준다. 이들은 신상이 공개되지 않고,쾌적한 쇼핑 환경에서 고가의 제품을 마음껏 구입할 수 있다.

강남의 큰 부자들은 제품 가격보다는 '희소성' 있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높은 만족감을 드러낸다. 누구나 아는 브랜드는 'NO'다. 해외 여행이나 유학 등의 경험을 통해 입수한 최신 트렌드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선호한다. 브랜드 인지도는 다소 낮지만 해외 패션 시장에서 각광받는 알렉산더 맥퀸,메종 마틴마르지엘라,드리스 반 노튼 등은 타지역과 비교해 강남 매장에서 매출이 2배 이상 높다. 고유의 시리얼 넘버가 새겨진 리미티드 상품을 발빠르게 선점하는 것도 강남 고객들이다. 프랑스 고급 샴페인 '동 페리뇽'으로 닦는다는 프랑스 수제 구두 '벨루티(Berluti)'는 청담동 부티크와 갤러리아 명품관 등 단 두 곳에서만 매장을 운영한다. 더 이상 매장을 열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경영 방침.최근 2000만원대의 맞춤 여행용 트렁크를 들여와 매진시켰다.

또 강남의 B백화점 바이어는 해외 출장시 오로지 한 명의 고객을 위해 제품을 구입해 온다.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1억2000만원짜리 모피 코트 한 벌은 국내에 도착하자마자 그 고객에게 바로 판매됐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수억원대 보석이나 시계 하나만 팔아도 그 매장은 한 달간 문닫아도 된다"며 "겉으로 보면 명품 보석 매장이 파리 날리는 것 같지만 어차피 그곳을 찾는 고객은 한 자릿수"라고 전했다.

안상미/심성미/최만수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