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勢 커지면 각종 부담커져 회사 쪼개는게 관행이었는데…"

기업인들에게 들어보니

"다소 늦은감 있지만 다행, 주조·열처리·금형업체 등 3000여 중소기업 혜택볼 것"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선진국의 꽁무니만 좇아서는 안됩니다. 한국도 독일 일본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글로벌 중견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이번에 산업의 허리를 튼튼히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윤봉수 남성 회장)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놓여 있는 중견기업들은 18일 정부가 발표한 '세계적 전문 중견기업 육성전략'과 관련,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중견기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닫혀 있던 성장판이 다시 열리게 됐다는 평가다. 전현철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정부가 발표한 중견기업 육성전략이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발돋움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며 "앞으로 중소기업인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글로벌 시장을 누비는 히든챔피언급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중소기업들은 체력과 체격을 함께 키워 원천기술과 기술융복합기술 개발에 적극 나설 수 있게 됐다. 조립 대기업과 부품 · 소재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중견기업의 출현이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전기전자 반도체부품 IT(정보기술)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제조업체들도 몸집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3D업종으로 관심 밖에 있던 주조 열처리 금형 용접 등 분야에서도 '히든 챔피언'이 솟아오를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혜택을 보게 되는 중소기업이 3000개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동안 중소기업들은 중견기업으로의 성장을 애써 외면해 왔다. 중소기업 범위(제조업의 경우 자본금 80억원 이하,상시 근로자수 300인 미만)를 벗어나는 순간 조세부담은 늘고 금융 및 R&D(연구개발) 자금 지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성장에 대한 피해의식이 팽배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에서 졸업하면 실제 투자세액공제(3%)와 특별세액감면(5~30%)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고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는 25%에서 6%로 줄어든다. 금융지원은 총액 한도 및 중기의무 대출이 제외되고 정책자금융자와 신용보증이 축소되는 등 정책자금을 실질적으로 지원받을 수 없다. 또 중기기술혁신개발사업 등 중기청이 지원하는 각종 R&D사업과 청년인턴 등 인력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런 이유로 졸업 유예기간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60%가 중소기업으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가지고 있을 정도다. 김현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원은 "국내 중소기업들은 사세가 커지더라도 각종 지원혜택을 누리기 위해 회사를 여러 개로 쪼개는 등 각종 편법으로 중소기업을 유지하는 게 관행처럼 이어졌다"며 "이런 이유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진 중견기업이 탄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중견기업 육성에 나서 글로벌 히든챔피언으로 키워내고 있다. 독일은 기업의 발전단계를 창업 · 성장 · 확장 3단계로 구분,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다. 중견기업 범주에 들어가는 성장단계부터는 혁신상품 개발 및 대기업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확장단계에서는 자금을 중점 지원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주고 있다. 이를 통해 중견기업 1만2000여개를 육성하고 600개가 넘는 전 세계 1위 상품을 창출했다. 현재 프랑스는 2008년 중견기업육성책을 마련,현재 4000여개인 중견기업을 2012년까지 6000개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날 청와대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참석한 김희용 동양물산 회장은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중견기업 육성책을 마련,세계적인 중견기업을 만들고 있어 기업인으로 늘 부러웠다"며 "하지만 이번 정책안이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실행만 잘되면 좋은 성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는 이번 대책에 그동안 업계가 주장해온 하도급 문제가 빠진 점이 아쉽다는 반응이다. 중견기업의 47%가 대기업의 1차 벤더인 상황에서 이들이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물품대금의 지급기일을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일 때 60일 내에 지급받던 납품대금이 중견기업이 되면 최대 120~150일 늦어지게 돼 2,3차 벤더에는 선지급해야 하고 원청업체로부터는 2,3개월 늦게 수령하게 돼 자금부담이 가중된다는 주장이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