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노조 '글로벌 확장' 제동

勞, 해외생산 現수준 유지 요구
社측 "경쟁력 저하…수용 불가"
금속노조와 현대 · 기아자동차 노조가 올해 노사협상 안건으로 '국내 및 해외 생산비율제' 도입을 내세웠다. 회사 측은 "글로벌 경쟁을 포기하란 얘기냐"며 당혹해하고 있다. 국내외 판매를 동시에 늘리자는 긍정적인 제안이 아니라,국내 및 해외 생산비율을 미리 정해놓고 이에 맞춰 판매하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현대차 노조,"해외생산은 48%만"현대 · 기아차 노조가 국내외 생산비율제를 들고 나온 것은 해외 공장이 계속 확대될 경우 장기적으로 국내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지금도 조금씩 해외에 일감을 빼앗기고 있다는 조합원 정서가 있다는 게 노조 측 논리다.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의 장규호 공보부장은 "무분별한 해외 확장이 국내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사측에 분명히 인식시킬 계획"이라며 "도요타가 무리한 해외공장 확충에 나섰다가 품질 문제로 추락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기아차 지부 관계자도 "생산비율제를 올해 임단협 안건으로 확정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그 논리에 대해 동의하는 조합원이 많다"고 전했다.

현대 · 기아차 노조는 우선 작년 수준의 국내외 생산비율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기아차 노조가 이 문제를 더 앞세울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는 작년 총 309만대 중 해외생산량이 149만대로 절반에 가깝지만,기아차의 경우 해외 비중이 25.7%에 불과해 국내외 생산 비율제를 관철시키면 실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실리주의 성향의 집행부로 교체된 현대차 노조와 달리 기아차 노조는 대부분 '강성파'로 분류되고 있다. ◆사측,"탄력적 경영 전략에 차질"

현대차와 기아차는 노조 요구에 대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대형 자동차 업체들도 위태로울 정도로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탄력적인 공장 운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국 미국 등 해외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으면 도요타 혼다 등과 가격 및 서비스 경쟁을 벌일 수 없다"며 "해외공장에서 차를 만들지 않을 경우 국내공장 일감이 늘어나기보다 그만큼 수익창출 기회만 놓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대차가 올해 브라질과 중국에 공장을 추가로 짓는 등 해외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시점이란 점도 노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다. 현대차는 내년 초부터 러시아에서 연 10만대 규모의 현지 생산을 시작한다. 기아차 역시 올해부터 조지아 공장의 생산량을 대폭 확대한다. 현대차는 올해 해외에서 176만대를 생산해 국내(170만대)를 사상 처음으로 앞지른다는 계획을 짜놓고 있다.

◆단순 '협상카드' 분석도

노조 일각에서는 국내외 생산비율을 정하자는 요구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쟁점화해 '주간 연속 2교대제' 등을 관철시킬 수 있는 협상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기아차 관계자는 "사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산비율제를 전면에 내세우고,이면에서 다른 요구로 타협을 종용한다는 전략인 것 같다"고 전했다. 해외생산 확대에 따른 고용불안 문제도 '해외에 공장을 신설할 때는 노조와 협의한다'는 현재의 단협 조항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사측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해외 공장을 지을 때마다 노조에 사전 설명을 충분히 해왔다"며 "국내 고용에 영향을 미칠 경우 노조 동의가 필요하지만,그동안 국내 고용이 줄지 않았기 때문에 합의할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기찬 가톨릭대(경영학) 교수는 "재고 조절을 위해선 많이 팔리는 곳에서 많이 생산하는 게 합당하다"며 "시장논리가 아니라 노조와 같은 조직의 이해관계에 따라 물량을 조절하면 결국 그 부담을 기업과 노조가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