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형생활주택 '외면'…고시원만 우후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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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주인 "짓기 쉽고 수익높다" 선호작년 12월 '도시형생활주택 주차장 완화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주변.석달이 지났지만 도시형생활주택이 공급된 실적은 한 건도 없다. 하지만 정부가 '준주택'개념에 포함시켜 새롭게 양성화할 계획인 고시원은 3곳이나 건축허가를 받았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주차장 완화구역에 지어질 연면적 200㎡ 미만의 도시형생활주택은 주차장 설치가 면제되는 혜택이 있는데도 땅주인들은 고시원 신축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건축허가 93채vs9000채
주거여건 악화 우려…최소기준 시급
21일 주택업계와 서울시에 따르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도심권 소형주택 공급정책'에 대한 수요자들의 반응에서 도시형생활주택보다 고시원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고시원 쏠림 현상'은 같은 크기의 소형부지에 도시형생활주택보다 고시원을 짓는 게 건축 인 · 허가가 쉽고 수익률도 높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고시원의 경우 별도 신축면적 기준이 없고,좁은 건물을 잘게 쪼개는 데도 유리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건축 허가를 보면 고시원 선호 현상이 확실히 드러난다. 도시형생활주택의 경우 법적 개념이 도입된 지난 7월부터 올 1월까지 서울 지역에서 3개동 93실(기숙사형)이 신축 허가됐으나 고시원은 330개동 9000여실이 허가됐다. 도시형생활주택 가운데 기숙사형은 주택크기(전용면적 30㎡ 이하)나 특징(방 안에 주방 없음)이 고시원과 비슷하지만 고시원에 밀려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양상이다. 더구나 고시원을 준주택 범주에 포함,주택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오는 4월국회에 상정될 예정이어서 법 통과 후엔'고시원 쏠림'이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문제는 고시원 쏠림이 도심 주거환경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2종 근린생활시설인 고시원은 주택가는 물론 상업지역까지 무분별하게 공급될 수 있다. 이에 대해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고시원은 '건축 연면적이 1000㎡ 미만이어야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각 실의 바닥면적을 정하지 않아 기숙사형은 물론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까지 잠식해 나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서울올림픽 이후 급증한 전세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1990년대 초 집중 공급된 다가구 주택들이 대거 고시원으로 바뀌면서 주거여건을 다시 악화시키는 문제를 가져올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는 쏠림현상을 막기 위해 고시원을 준주택에서 제외하거나 도시형생활주택에 상응하는 건축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소 방 크기 기준이라도 마련해 도시 슬럼화를 막아야 한다"며 "건물용도상 상업시설에 가까운 고시원이 소규모 공동주택인 도시형생활주택과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두 가지 모두 나름의 장점이 있는 만큼 서로 충돌하는 문제는 아니다"며 "민간에 다양한 주택유형을 제시하고 개발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공공의 역할"이라고 말했다.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도시형생활주택=도시에 건설되는 20채 이상 150채 미만의 소형 공동주택이다. 다세대·원룸형·기숙사형으로 구분된다. 전용면적 85㎡ 이하인 다세대 주택은 도시형생활주택으로 신청할 경우 1개 층을 더 올리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방 크기가 12~50㎡까지인 원룸형은 세대별로 독립주거가 가능하도록 욕실·부엌을 설치할 수 있다. 7~30㎡까지의 기숙사형은 취사장·세탁실 등을 공동 사용토록 설계된다.
●고시원=다중이용업소 안전에 관한 특별법상 '고시원업'에 대한 시설이다. 바닥면적 합계(연면적)가 1000㎡ 미만이어야 하며 이를 웃돌면 숙박시설이 된다.